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석유산업

석유이야기



우리나라는 세계 제6위의 원유 수입국이다. 국내에서는 석유가 거의 생산이 되지 않아, 필요한 원유 전량을 해외에서 조달해야 한다. 2,300만 대나 되는 자동차와 산업생산에 필요한 동력원 및 석유화학의 원료인 나프타를 차질 없이 공급하기 위해서는 수십만 톤짜리 유조선이 쉴 새 없이 중동지역 페르시아만에서 한국으로 석유를 날라야 한다.

우리나라 남부 해안지역 정유공장에서 중동의 페르시아만까지의 해상 거리는 약 25,000㎞, 뱃길 3만 리로 서울에서 부산 간을 약 30회 왕복하는 거리에 해당한다. 유조선이 원유를 싣기 위해 빈 배로 우리나라 항구를 떠나 사우디 원유 선적항 라스타누라까지 가는데 대략 16일 정도가 소요된다. 현지 선적항에서 약 180만 배럴의 원유를 선적하는데 소요되는 만 2일을 포함해서 출항하기까지 약 3~4일이 걸리게 되며, 같은 코스를 되돌아오는데 약 21~22일이 소요된다. 갈 때보다 항해 일수가 많은 것은 배에 원유를 실어 무거워졌기 때문이다. 유조선에 실려 온 원유는 정유공장 앞바다에 도착하여 파이프라인을 통해 지상의 원유 저장탱크로 옮겨진다. 여기에도 2~3일 정도의 기간이 소요된다. 결국 유조선이 우리나라를 떠나 원유를 싣고 돌아와서 정유공장에 원유를 입고하기까지 대략 45일이 걸리는 셈이다.

유조선은 적재 가능한 중량(DWT)에 따라 아프라맥스(AFRAMAX), 수에즈맥스(SUEZMAX), VLCC(초대형 유조선) 등으로 구분된다. AFRA(Average Freight Rate Assessment)MAX는 운임•선가 등을 고려했을 때 최대의 이윤을 창출할 수 있는 가장 경제적인 사이즈란 뜻으로 8~11만 톤급 유조선을 말한다. SUEZMAX는 원유를 가득 싣고 수에즈운하를 통과할 수 있는 최대 선형으로 13~15만 톤급의 선박을 말한다. VLCC(Very Large Crude Oil Carrier)는 20~30만 톤 규모의 원유를 운반할 수 있는 초대형 유조선을 말한다. 원유의 수송은 장거리일수록 한꺼번에 많은 양을 실어 나르는 것이 경제적이다. 1970년대에 VLCC가 등장한 이후 1980년대 말 저유가가 도래하면서 세계적으로 석유소비가 증가추세를 보이자, 유조선의 대형화가 가속화되어 30만 톤이 넘는 극초대형유조선 ULCC(Ultra Large Crude Oil Carrier)이 출현하기에 이르렀다. 우리나라 조선소에서 건조한 44만 톤 ULCC는 선체길이가 380m로서 63빌딩을 눕혀 놓은 것보다 1.5배가 더 길다.

우리나라에서 소비목적으로 하루에 수입하는 원유의 양이 약 306만 배럴인데 무게로 환산하면 약 42만 톤에 달하므로 우리나라 전체 국민이 하루 사용할 수 있는 양의 기름을 ULCC 한 척이 실어 나른다고 보면 된다. 원유 40만 톤이라 함은 체중 70kg의 성인남자 약 600만 명에 해당하는 무게로 서울시민의 60% 이상을 한꺼번에 실을 수 있는 규모이다. 한편 우리나라는 원유수입 전량을 해로를 통해 들여 오기 때문에 육지의 도로와는 달리 언제라도 수송상의 안전문제에 봉착할 수 있다. 특히 우리나라는 원유도입물량의 약 80% 이상을 중동으로부터 들여오기 때문에 페르시아만, 인도양, 말라카해협, 남중국해, 동중국해의 해양수송로는 우리에게는 생명선이나 마찬가지라 할 수 있다. 미국 해군 니미츠 제독은 “수도를 빼앗기고도 전쟁에 승리한 나라는 있지만 석유 수송로를 빼앗기고 전쟁에 이긴 나라는 없다”고 말한 바 있다. 이는 석유와 석유 수송로 확보의 중요성을 함축하는 말이다. 그러나 유감스럽게도 위에 언급한 우리나라의 석유 해상로는 가장 위험한 해로라고 말할 수 있다.





중동지역 페르시아만은 만성적으로 정치정세가 불안하여 분쟁이 끊이지 않는 곳이다. 페르시아만 그 자체는 이란의 연해이기 때문에 이란-이라크 분쟁의 직접적 대상이 된다. 또한 아라비아해로 나오기 위해서는 지형적으로 불편한 호르무즈 해협을 통과해야 한다. 인도 남단을 지나는 인도양에서는 적대관계인 인도와 파키스탄이 대치하며 해군력을 증강하고 있어 해로에 긴장을 불어 넣고 있다. 말라카해협은 중동과 극동을 잇는 최단거리 해로이지만 자연조건이 가장 열악한 지역이다. 말레이시아 반도와 인도네시아의 수마트라 사이를 통과하는 해협으로 길이는 830km이며, 해협의 폭은 가장 넓은 곳이 320km, 가장 좁은 곳은 18km도 안 된다. 때문에 각종 선박사고가 빈발하며, 해적까지 출몰하는 위험한 지역이다. 그러나 말라카해협을 비껴서 자바해로 우회할 경우 3.5일이 더 소요되어 막대한 운송비용이 추가로 소요된다. VLCC 한 척이 운항하는 데에 하루 약 8톤(52배럴)의 B-C유를 연료로 소비하기 때문에 위험을 무릅쓸 충분한 이유가 된다. 말라카해협을 지나더라도 남중국해와 동중국해는 주변 해역의 모든 섬들이 국제분쟁지역에 속해있다 해도 과언이 아니다. 더구나 최근에는 이 지역에 석유와 천연가스가 다량 매장되어 있는 것으로 보고되어 있어, 자원을 둘러싸고 중국과 주변국가들 사이에 분쟁 상황이 악화될 가능성이 높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