보도자료
에너지 문제에 국가적 관심 기울여야
연합뉴스 정열 기자
에너지 전쟁의 시대다.
올해 초 미국은 이라크를 침공했다. 수많은 국제여론의 비난을 무릅쓰고 자행한 이 전쟁을 통해 미국은 세계 2위의 매장량을 자랑하는 산유국인 이라크에 대한 지배권을 손에 넣을 수 있었다.
이라크전은 에너지를 둘러싼 국제정세가 얼마나 긴박하게 돌아가고 있음을 상징적으로 보여주는 사건이었다. 이라크를 손에 넣음으로써 미국은 안정적인 에너지원을 바탕으로 21세기에도 세계의 패권국가로 군림할 수 있는 발판을 마련했으며 더불어 21세기의 가장 강력한 경쟁자로 떠오르고 있는 중국을 효과적으로 견제할 수 있는 교두보를 확보한 셈이 됐다.
급속한 산업화가 진행중인 중국은 매년 두자릿수의 성장률을 기록하며 21세기 초강대국으로의 도약을 꿈꾸고 있으나 미국의 이라크 침공으로 산업화의 근간인 에너지 확보에 빨간불이 켜졌다. 중국은 지난 97년 석유수출국에서 석유수입국으로 돌아선 이래 매년 석유수입량이 급증, 지난해에는 처음으로 일본에 이어 세계 2위의 석유수입국으로 올라섰다.
중국은 반미정서가 강한 후세인 정권과의 상대적 친밀감을 이용해 우수한 품질과 풍부한 매장량을 자랑하는 이라크 원유의 도입을 적극 추진했으나 미국의 이라크 점령으로 인해 이같은 계획이 차질을 빚고 있다. 중국은 향후 10년간 급속한 산업화의 진행 뿐 아니라 국민 개개인의 자동차 보유대수 역시 두자릿수의 증가세를 보일 것으로 예상되고 있어 석유소비량은 급속히 증가할 것으로 전망된다.
이같은 사실을 모를리 없는 미국은 이라크 점령을 통해 중국의 주요 석유공급줄을 틀어쥠으로써 21세기 자신들의 유일한 라이벌 국가를 견제할 수 있는 중요한 전략적 요충지를 확보한 셈이다. 이처럼 21세기의 패권을 다투는 강대국들에 있어 에너지는 국가 운명의 흥망성쇠를 가름하는 전략적 핵심자원으로 평가받고 있다.
최근 러시아로부터의 원유도입 파이프라인 건설을 둘러싸고 벌어지고 있는 중국과 일본의 치열한 외교전도 이같은 에너지 확보의 중요성을 보여주는 좋은 예다.
‘며느리도 모른다’는 막대한 양의 러시아 원유와 천연가스를 수송하는 파이프라인이 대륙을 관통해 중국과 한반도로 건설되느냐, 아니면 러시아 연해지방 항구도시인 나홋카쪽을 통해 해저파이프라인을 매설해 일본쪽으로 연결되느냐에 따라 동북아 정세가 큰 영향을 받게 된다.
이 문제는 당장 우리나라에도 적잖은 영향을 끼칠 것으로 보인다. 중국을 통해 북한을 관통, 우리나라까지 러시아 원유가 수송될 경우 21세기 에너지원 확보에 큰 전기가 마련되지만 만약 해저파이프라인 건설을 통해 일본으로 흘러들어갈 경우 이같은 전략에 상당한 차질이 예상되기 때문이다.
지금 중국과 일본은 국가원수가 직접 나서 러시아를 상대로 이 문제에 사활을 건 외교전을 펼치고 있다. 지난 5월 후진타오 중국 주석은 러시아를 방문, 푸틴 대통령을 만난 자리에서 값싼 건설비용 등을 예로 들며 중국 대륙을 통한 송유관 건설을 요청했으며 고이즈미 일본 총리 역시 같은 달 말 푸틴 대통령과 만나 자금지원 등 여러 가지 유리한 조건을 제시하며 일본쪽으로의 송유관 건설을 설득했다. 그에 비해 우리의 관심과 노력은 미약하기 짝이 없다.
지금 에너지 확보는 선진국들도 국가원수가 직접 나서서 챙기는 중요한 문제임에도 불구하고 우리나라는 이 문제에 대한 인식 자체가 부족한 실정이다. 고작해야 주무부처인 산업자원부 장관이 정유회사 회장단과 함께 주요 원유수입국인 중동지역을 순방하며 안정적인 원유공급을 당부하는 수준이다. 이래가지고서는 곤란하다.
에너지문제는 주요 강대국들도 국가원수들이 직접 나서서 챙기는, 21세기 국가운명을 결정짓는 중차대한 문제다. 더 이상 일개부처 장관이나 사기업에 맡겨놓아서는 안된다. 대통령이 직접 나서 러시아 원유 송유관 건설을 비롯한 주요한 에너지 현안을 챙겨야 한다.
당장은 대통령 직속으로 에너지 전문가들로 구성된 ‘21세기 에너지대책위원회’(가칭) 등을 만들어 최고통수권자가 에너지 문제를 직접 챙기는 모습을 보여줘야 한다.
이제는 우리도 70년대의 원유파동 때처럼 발등에 불이 떨어지고 나서야 허둥지둥 대책마련에 나서는 초보적인 수준에서 벗어나 국가대계를 결정짓는 에너지문제를 미리미리 대비하고 대책을 세우는 보다 성숙한 모습을 보여줘야 할 때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