보도자료
에너지는 생존입니다
안병원 (대한석유협회 회장)
풍요의 계절 가을입니다. 그러나 올해는 잔인한 계절이라는 생각에 가슴이 무겁습니다. 한가위에 불어 닥친 태풍 ‘매미’가 할퀴고 간 흔적이 농촌, 어촌, 도시를 가릴 것 없이 깊은 상처로 남아 있습니다. 들녘에는 잘 익은 곡식대신 농민의 수심이 가득합니다. 또한 만선의 기쁨을 맞던 항•포구는 흡사 전쟁터처럼 폐허화하여 쓰레기더미가 산을 이루고 있습니다. 일년내 정성을 쏟아 키운 각종 농작물 또는 어패류들이 눈앞에서 쓸려내려가거나 썩어버려서 폐기되는 것을 지켜보는 쓰라린 마음은 비단 농어민에게만 국한되는 것은 아닐 것입니다. 온국민이 함께 아파하며 조속한 피해 복구를 염원하고 있습니다.
그렇지 않아도 나라 안 소식은 온통 우울한 소식들 뿐이었습니다. IMF이후 최대의 불경기로 일컬어지는 작금의 경제 현상으로 수 많은 청년 실업자와 신용불량자가 양산되고, 빚에 쪼들려 일가족이 목숨을 끊는 극단적 좌절이 우리를 슬프게합니다. 유감스럽게도 IMF제제하 온 국민이 하나가 되어 금반지 모으기에서 보여 주었던 국난 극복을 위한 고통분담 노력은 찾아보기 어렵습니다. 오히려 가진 자가 집단행동을 통해 더 많은 것을 차지하려고 합니다. 꼬리를 물고 일어나는 각종 불법 파업과 시위는 경제불안에 사회불안을 가중시키고 있습니다.
이러한 경제•사회적 난맥상에서 외국기업의 국내 유치는 고사하고 국내 기업도 사업을 정리하고 외국으로 떠나가는 것을 막을 수 없습니다. 제조업하기 어렵다는 말이 피부에 와 닿음을 누구나 느끼는 때입니다. 자기 목소리, 자기 이익만 난무하는 사회는 더 이상 비젼을 찾기 어렵습니다. 조국을 등지고 외국으로 이민가서 살겠다고 하는 사람들이 급증하고 있는 현실이 오늘 우리의 자화상인 것입니다.
태풍 ‘매미’가 남긴 피해는 시간이 지나면 복구가 가능합니다. 전국에서 답지한 온정이 상처에 온기를 돌게 합니다. 전국민의 성원과 배려는 수입개방에다가 태풍까지 겹치면서 생기를 읽어가던 農心에 생기를 불러 일으킬 것입니다. 오히려 소외됐던 농어촌에 도시인의 관심이 고조되면서 모처럼 도시와 농촌이 한마음이 된 모습을 보여주는 계기가 되고 있습니다 피해자인 농어민들은 물적피해를 당했지만 더욱 값진 정신적 보상으로 인하여 재기의 희망을 잃지 않을 것입니다.
이에 반해 파업, 시위등이 미치는 산업피해는 물적피해는 물론 정신적 피폐를 남깁니다. 복구된다 하더라고 치유할 수 없는 불신의 앙금을 남기고, 또 다른 사회적 갈등을 잉태하는 원인이 되기도 합니다. 더러는 대기업을 포함한 수 많은 회사가 끝내 복구에 실패하여 스러져간 경우들을 보았습니다. 생활의 터전인 회사가 문을 닫는다면 다른 명분을 얻는 들 무슨 소용이 있겠습니까.
최근 우리 경제의 오늘과 내일에 대한 비관론이 커지고 있음을 봅니다. 올해 경제성장율이 2%를 밑돌 것이라는 외국 금융사의 전망도 있습니다. 우리 모두의 머리위에 저성장의 불안한 그림자가 드리우고, 나아가 이웃 일본처럼 ‘저 성장의 늪’에 빠질지도 모른다는 적신호가 이미 켜졌다는 말도 있습니다.
여기서 멈출 수는 없습니다. ‘국민소득 2만달러’, ‘동북아 허브’는 현 정부가 과제로 제시한 것입니다. 국민소득 1만달러대에서 더 이상 나아가지 못하고 주저 앉는다면 제2의 아르헨티나가 되지 않는다고 장담할 수 없습니다. 소득 2만달러가 되기 위해서는 연 7%의 성장에 50만개의 일자리가 창출되어야 한다고 합니다. 가계 기업 정부 경제3주체가 혼연 일체가 되어 성장의 동력을 되살리는 지혜를 모아야 할 때입니다. 매번 우리국민이 보여준 재난극복의 정신으로 고통과 과실을 나누어 가질 때 희망이 보일 것입니다.
우리 정유산업은 국가 기간산업으로서 현재 산업발전을 이루게 한 초석이었다고 할 수 있습니다. 현대 사회가 지식 정보화 사회라 할지라도 에너지가 그 근간을 이루고 있음을 최근의 사례에서도 볼 수 있습니다. 8월 중순 미국에서 일어난 대규모 정전사태는 미증유의 사회 혼란을 초래하였습니다. 또한 태풍 피해를 입은 우리 남해안은 도시 기능이 마비되었고 암흑 속에서 생존을 위협하는 공포와 싸워야 했습니다. 한국의 태풍 ‘매미’나 미국의 ‘이사벨’에서 보듯이 정작 큰 피해를 주는 것은 자연재해가 아니라 그에 따른 정전사태등 에너지 공급 중단입니다. 이렇게 볼 때 에너지는 현대 사회에서 없어서는 단하루라도 지낼 수 없는 필수적 요소인 것입니다. 세계 각국이 값싼 에너지의 확보를 위해 불꽃 튀는 각축전을 벌이고 있는 것도 이러한 맥락이며, 이라크 전쟁이 그 중 하나라는데 이견이 없는 것 같습니다.
다행히 우리나라는 지금까지 자연재해가 아닌 대규모 에너지 중단사태를 겪지 않았습니다. 그 점에 대해서 에너지 산업 종사자의 한 사람으로서 긍지와 책임을 느끼며, 관련 종사자 모두의 수고와 노력에 경의를 표하는 바입니다.
태풍으로 유명을 달리한 분들을 애도하며, 그 가족과 그리고 집과 재산을 잃은 피해자분들에게 위로의 말씀과 함께 조속한 복구를 기원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