보도자료
석유산업의 경쟁력과 우리의 미래
안병원/대한석유협회장
이라크전쟁이 종결되었다. 우리나라에 큰 영향없이 비교적 단기간에 끝나서 우리로서는 실로 다행스럽다 할 것이다. 이번 전쟁을 놓고 군사전략적 측면과 정치경제적 역학관계등 여러 관점에서 다양한 분석과 전망이 나오고 있지만 미국주도의 국제석유질서 재편 목적에서 시작된 것이라는 데에는 이견이 없다. 이번 전쟁은 경제전쟁이라고 할 수 있으며 그 중심에 석유가 자리하고 있다.
이것은 석유라는 자원의 유한성과 상업적 대체재의 부재에 기인하고 있는 만큼 석유확보 여부는 한 국가의 경쟁력과 미래를 결정하는 생존의 문제가 된 것을 의미하기도 하다. 갈수록 석유가 자원무기화로 치닫고 있는 냉엄한 국제현실을 감안한다면 우리나라와 같이 기름 한방울 나지 않는 국가는 그 대책이 더욱 절실함에도 불구하고 현재 우리의 석유를 둘러싼 정책과 비젼이 21세기에 국가의 경쟁력과 후손의 미래를 담보하는데 얼마나 기여할 수 있을지 의문이다.
우리나라는 에너지사용량중 석유에 50%를 의존하고 있으나 사용전량을 해외에서 들여와야하는 태생적 자원빈국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우리나라는 원유도입 세계4위, 석유소비량은 세계 6위에 이를 정도로 에너지다소비국이다. 그것은 지난 40년동안 고도성장을 해오는 과정에서 선박 세계1위, 철강 자동차 석유화학산업등이 세계5위내에 들어가는 중화학공업에 역점을 둔 결과이며 지금은 세계 11위권의 무역국가로 성장하게 한 원동력이었다. 또한 국내 석유산업은 ‘02년 현재 매출액 39조원으로 GDP중 6.5%를 차지하고 석유류세수는 ‘03년 국방비예산인 18조2천억원을 초과하는 18조5천억원을 담세하여 총 국세중 20%에 달하고 있다. 이와 같이 우리나라의 산업발전과 국제적위상의 이면에는 석유를 비롯한 에너지산업의 경쟁력과 지원이 뒷받침되었기 때문이며 반대로 이것이 불가능하게 된다면 우리경제의 근본을 흔들 수도 있다는 뜻이기도 하다.
그러나 현실은 그리 밝지 못하다.
‘97년 석유산업의 자유화 후 불과 5년만에 수입제품에 10% 가까운 시장을 내주게 되고, 높은 세금구조에 기인한 유사석유제품 범람 등으로 우리나라의 정유산업은 2000년 이후 약 1조원에 가까운 막대한 경상적자에 직면하고 있는 등 정유산업의 경쟁력은 거의 바닥수준에 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이러한 결과는 현재 완전경쟁시장하에서 국내석유산업 내부에도 문제가 있겠으나 국가적인 석유정책의 미비로 국가기간산업으로서의 역할을 더 이상 수행하기 어려운 위기상황에 놓일 수도 있다고 판단되며 시급한 개선이 필요하다.
석유산업과 관련하여 주요 석유소비국들은 소비지정제주의를 채택하고 있다.
자국에서 쓰는 석유는 자국에서 정제 생산하는 정책을 원칙으로 삼는 것이다. 그것은 석유공급의 안정성을 기하고, 국내수요구조와 품질규격에 맞추어 안정공급을 할 수 있기 때문이다. 또한 소비지정제주의는 무역수지 개선효과와 고용증대 등 국내경제에 미치는 영향 또한 크다. 더욱이 에너지집약적 장치산업 위주의 산업구조를 가지고 전량 수입에 의존해야 하는 분단국인 우리나라로서 소비지정제주의는 포기할 수 없는 절체절명의 명제가 될 것이다.
소비지정제주의를 지탱하는 정부의 주요 정책적 수단으로 가격규제·수입규제·관세제도가 있다. 그러나 우리나라는 가격과 수출입이 자유화되어 있어 관세제도를 활용할 수 있다. 그러나 우리나라의 원유관세제도는 국제수준과 국내체계와도 부합되지 않고 있어 석유산업의 경쟁력을 저하시키는 주요인으로 지적받고 있다. 원유관세인하는 국내시장에서 시설투자에 따른 고정비를 부담하고 있는 정유사와, 고정비 부담없이 영업하는 수입사간의 공정한 경쟁을 도모하기 위한 최소한의 Rule을 확립하려는 것이다. 이러한 중요성 때문에 주요선진국 및 경쟁상대국은 석유산업을 자유화하면서 원유와 제품간 적정비율를 조정하여 대부분 원유 무관세를 유지하고 있다. OECD 30개국중 24개국이 원유무관세이고 중국뿐만 아니라 대만도 ‘02년부터 무관세로 전환했으며 미국은 0.3%, 일본도 ‘06년부터 무관세가 적용된다. 그러나 우리나라는 ‘83년부터 20년동안 5%의 높은 관세를 부과하고 있다. 세수확보때문으로 보이지만 우리나라와 경쟁하고 있는 국가들에 비해 스스로 재갈을 물리고 있는 형국이다.
또한 국내관세율 체계와도 부합되지 않고 있다.
우리나라의 관세는 원재료 1~2%, 1차가공품 5%, 완제품 8%의 체계로 원재료에는 낮은 세율을 부과하고 완제품에는 높은 세율을 부과하고 있다. ‘02년 8월 재경부산하 조세연구원의 관세제도 연구결과 원유와 수입석유제품의 적정한 관세율의 격차는 8%가 유지되는 것이 바람직하다고 발표한 바 있다. 주요국인 일본 6%, 중국 7.5% 대만등도 9.5%의 차이를 두어 국내산업 보호를 통한 경쟁력을 강화하고 있으나 우리나라만 유독 원유와 완제품간 관세차이가 2%에 불과해 경쟁력을 저해하고 있다.
국제 및 국내관세체계와 부합되게 원유를 무관세로 하고 원유와 제품간의 관세차이를 적정비율로 개선한다면 석유산업의 경쟁력을 확보할 수 있는 전기를 마련할 수 있을 것으로 판단된다. 조세연구원과 에너지경제연구원에 따르면 원유관세 무세화의 후생효과는 포기되는 세수 1원당 1.258원의 국민들의 실질소득 증가로 연결되어 어떤 원자재중에서도 가장 효과가 크며, 소비자물가 0.05%하락, 무역수지 약 4.9억불 개선, 이에 따른 경제성장율은 0.1% 향상된다고 한다.
원유무관세에 따른 세수결손은 우려하지 않아도 된다. ‘01부터 ‘06년까지 진행중인 에너지세제개편에 따라 총 34조 1천5백억원의 세수가 증가되고 ‘06년 이후에도 세제개편전 대비 연10조원의 지속적인 세수가 증가할 전망이기 때문에 충분히 상쇄가능하다.
석유는 우리나라 총 에너지소비의 절반을 차지하고 있으며 산업체 및 국민생활에 필수 불가결한 기초에너지원이다. 또한 국내 세수운용에도 중요한 위치를 차지하고 있다. 그동안 국내 석유산업은 1,2차 석유위기 및 걸프전쟁 그리고 최근 이라크전쟁등을 극복하면서 경제발전을 위한 안정적인 공급에 주력해 왔다. 비록 최근 석유산업의 환경이 갈수록 척박하지만 정유업계에 부여된 책임을 성실히 수행할 것이다. 이를 위해 불합리한 관세율 체계에 대한 개선등 국내석유산업의 경쟁력을 제고할 수 있는 정책의 시행은 어느때 보다 시급하고도 중요하다. 기간산업인 석유산업이 건전하게 육성 발전되어 국가발전의 초석이 될 수 있도록 국회 및 정부 그리고 언론과 국민의 지속적인 관심과 제도적인 지원이 필요한 시점이다.<끝>