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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팩트체크해~油
멀고 먼 타국 땅에서 태어나 유조선을 타고 우리나라에 도착한 석유, 어마무시한 양의 석유는 어떻게 우리 일상 곳곳까지 오게 되는 걸까? 평범한 화물처럼 대형트럭이나 철도에 실어 오는 게 아닐까 하는 생각이 문득 들지만, 오직 석유만 싣는 특별한 수송수단이 있다는데?! 인류의 에너지원이자 가장 효율적 자원인 동시에 기후변화 위기의 딜레마를 안겨주고 있는 석유! 팩트체크해~油가 석유와 관련된 오해와 진실을 파헤친다.
1879년 5월 28일, 석유 운송의 혁명이 시작됐다. 나무조각을 엮어 만든 술통인 배럴(Barrel)로만 운송되던 석유가 ‘송유관(Oil Pipeline)’을 타고 움직이기 시작했다. 그것도 12,500여 통의 배럴이 필요한 약 200만 리터의 석유가 단숨에 흘러갔다. 그렇게 가파른 산맥과 대지를 오르내리며 송유관의 역사는 시작됐다.
1914년부터 4년간 계속됐던 제1차 세계대전. 그 기간 중 전쟁 필수품이었던 자동차와 항공기의 연료인 석유의 중요도는 더욱 커졌다. 이후 ‘석유전쟁’이라고도 불리는 제2차 세계대전이 끝나면서 송유관은 본격적인 석유수송 수단으로 자리 잡기 시작했다. 당시 미국은 화물선과 유조선 등 항로를 활용해 전쟁물품과 석유를 운반했다. 그러나 대서양 연안을 누비는 독일 잠수함의 어뢰 공격으로 인해 수많은 배와 물품이 깊은 바다로 가라앉기 일쑤였다. 특히 거대한 사이즈의 유조선은 여타 화물선보다 눈에 잘 띄었고, 속도 또한 느렸기 때문에 독일 잠수함의 주요 표적이 될 수밖에 없었다. 그 결과 연합국에 필요한 석유는 물론, 동부에서 사용할 석유 공급에도 차질이 생겼다.
석유 수송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당시 미국 정부는 한 가지 아이디어를 냈다. 바로 텍사스에서 생산된 원유를 정제시설이 집중된 동부까지 보낼 수 있는 ‘장거리 송유관’을 만들자는 것이었다. 공사 시작 1년 만인 1943년 8월 14일, 미국은 텍사스에서 뉴저지까지 무려 8개 주와 20개의 강을 지나는 2,018km 길이의 송유관을 만들어냈다. 송유관 파이프의 구경은 24인치로, 이전에 사용되던 것보다 무려 5배나 컸기 때문에 ‘빅 인치(Big Inch)’라고 불렸다. 이 빅 인치 송유관은 하루에 30만 배럴의 원유를 실어 나르며 전쟁 중 효율적이고 안전한 석유수송을 가능하게 했다.
이듬해인 1944년에는 송유관의 구경을 20인치로 줄인 반면, 총 2,373km에 달해 빅 인치의 길이를 넘어서는 ‘리틀 빅 인치(Little Big Inch)’를 완공해 더욱 효율을 높였다. 이렇듯 빅 인치와 리틀 빅 인치는 미국 내 석유수송의 반 이상을 담당하며 결국 전쟁을 연합국의 승리로 이끌 수 있었다.
대한송유관공사에 따르면, 송유관은 교통과밀을 완화시키고 유류(油類)의 물류비용 절감과 비축효과를 발생시키는 등 해상•철도•선박 수송에 비해 안전하고 경제적인 수송수단이다. 대한민국 송유관 역사의 시작은 1969년 미8군에 의해 건설된 포항~의정부를 잇는 국방부송유관(TKP, 452km)이다. 이후 1971년, SK이노베이션의 전신인 유공은 제품 수송용으로 울산~대구 간 송유관(YKP, 101km)을 건설해 국방부송유관에 연결하기도 했다.
현재 우리나라에는 정부와 SK에너지를 비롯한 정유사가 공동 출자해 설치한 크게 6개 라인으로 나뉘는 송유관이 있으며, 이는 대한송유관공사에서 관리 중이다. 이 송유관 라인을 따라 곳곳에 SK에너지 물류센터와 대한송유관공사 저유소가 위치한다. 송유관은 SK이노베이션 울산Complex(이하 울산CLX)와 SK인천석유화학으로부터 내륙지역 도시인 서울•대전•대구•광주•전주 등까지 연결돼 있다.
송유관은 타 수송수단에 비해 안정적이고 날씨•교통상황 등의 외부영향으로부터 비교적 자유롭기 때문에 국내 경질유(輕質油) 1차 수송의 가장 큰 축을 담당한다. 실제로 울산CLX에서 출하되는 경질유인 휘발유, 경유, 등유, 항공유 등 석유제품의 30%가량이 송유관으로 수송된다. 울산CLX 공장 내 송유관의 길이는 총 60만 km로, 무려 지구와 달 사이(약 38만 5천 km)를 잇고도 남는 거리를 자랑한다.
또한 단순히 수송뿐만 아니라 원유 정제부터 석유제품의 제공까지 이르는 모든 공정을 송유관을 통해 처리한다. 유전(油田)에서 정유공장으로, 또한 이곳에서 최종 소비지로 향하는 송유관의 여정은 크게 3단계로 이루어진다.
1. 게더링 시스템(Gathering System)
유전 속 석유가 나는 ‘유정(油井)’으로부터 특정한 곳에 원유를 수송하는 파이프라인과 부속설비를 일컫는다. 이 시스템은 원유를 이동시키기 위해 여러 지선으로 이어져 있으며, 관의 지름은 평균적으로 10~30cm다. 보통 유전에서 생산된 원유를 모으는 역할을 하기 때문에 다른 시스템에 비해 송유관 길이가 짧다.
2. 트렁크 라인 시스템(Trunk Line System)
유전에서 나온 원유를 본격적으로 정유 공장 등의 수취 지점에 운송하는 시스템으로, 3단계 시스템 중 가장 길게 설치해야 하기 때문에 건설공법이나 파이프의 재료 개량, 설계공법 등이 지속적으로 발전돼 왔다.
3. 디스트리뷰션 시스템(Distribution System)
정유공장이나 항구 등의 제품 공급지로부터 최종 소비지까지 석유제품을 수송하는 시스템으로, 이를 위해 지역 내부에까지 건설되며, 작은 지선들로 이뤄졌다. 디스트리뷰션 시스템으로 운송하는 석유제품으로는 휘발유, 등유, 항공유 등이 있다. 이처럼 다양한 석유제품을 운송해야 하므로 석유제품의 품질과 등급을 정확히 분류할 수 있어야 하며, 미세한 유류 비율의 변화를 감지할 수 있어야 한다. 이 때문에 시스템의 유류 비율 감지 장치와 석유 흐름 방지 장치 등이 발달했다.
깊고 깊은 땅속에서부터 출발해 일상 곳곳에서 사용되는 석유. 석유가 우리 일상에 함께할 수 있는 이유는 지금도 세계 곳곳에서 석유를 나르는 송유관의 덕이 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