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문가칼럼
우리 경제와 산업에 대한 냉철한 이해와
과학 기술의 토대 위에 수립된
2035 NDC와 배출권거래제를 고대하며
지난 8월 29일 헌법재판소는 탄소중립·녹색성장 기본법 제8조 제1항에 대해 헌법에 합치되지 않는다고 판결했다. 헌재는 2050년 탄소중립의 목표 시점까지 감축목표가 제시되지 않아 지속적인 감축을 실효적으로 담보할 수 있는 장치가 없다는 점에서 미래세대에 과중한 부담을 이전할 수 있다고 지적하였고 이 판결에 따라 우리나라는 2026년 2월까지 2031년에서 2049년까지 감축목표를 규정해야 한다. 우리는 탄소중립에 이르는 길을 어떻게 구성해야 할 것인가. 이 과정에 2035년 NDC와 제4차 계획기간 배출권거래제 관련 계획이 놓여 있다.
우리나라 2035 NDC와 탄소가격제로서 배출권거래제가 지향하는 기본적인 전제는 2050년 탄소중립 목표일 것이다. 우선 2035 NDC는 탄소중립으로 가는 중간 경로를 구성하는 데에서 중요성을 가진다. 즉, 헌재의 판결에서 제시한 중간 경로의 일부를 구성하는 과정이다. 한편, 제4차 계획기간 배출권거래제는 당면한 2030년 NDC를 달성하기 위한 핵심 수단으로서 기능하게 된다.
국가 목표가 설정되면 이는 배출권거래제 할당으로 구현되므로 NDC의 설정을 우선 살펴보자. 2035년 NDC도 제5차 계획기간 배출권 할당을 기본적으로 결정하는 핵심 수단이다. 헌재 판결도 있으니 2035년 목표는 의욕적인 목표를 설정해서 우리나라가 기후변화 대응을 선도해야 한다는 목소리가 적지 않다. 그러나, 필자가 보기에 우리나라 NDC에서 철저하게 고려해야 할 것은 의욕(ambition)과 비용(cost)의 조화다. 의욕이 앞서 국제사회에 닿을 수 없는 목표를 제출하면 우리나라에 무슨 실익이 있는가?
산업 부문에서 2035년은 탄소중립을 위한 기술적 수단이 제대로 구체화되기 이른 시기다. 예를 들어, 우리나라 정유업계는 지난 2022년 ‘정유업계 탄소중립 기술개발 로드맵’을 통해 정유산업의 탄소중립 이행을 위한 핵심 전략을 제시한 바 있다. 구체적으로 이 로드맵에서 제시되고 있는 5대 감축 전략은 원료 대체, 무탄소 연료전환, 에너지·공정 효율화, CO2 포집·활용·저장, 대체연료 생산 및 보급 확대인데, 이 세부 수단을 들여다보면 실제 2035년 이전에 상용화되어 유의미한 감축 성과를 낳을 수 있는 수단은 거의 없다고 생각된다. 이를 감안하면 정유업계에서 실제 가용한 수단은 기존 기술하에서 친환경 연료를 부분적으로 사용하고 일부 설비 개체 등을 통해 에너지 효율을 개선하거나 온실가스 배출집약도를 낮추는 것만이 남게 된다. 이를 초과하여 의욕성만을 추구하는 것은 닿을 수 없는 길이거나 큰 비용을 초래하는 일일 것이다. 만약, 의욕만을 앞세운 목표에 근거해서 규제가 설정된다면 어떤 기업도 시장에서 살아남지 못할 것이다.
결국 2035년 NDC는 우리나라 산업과 에너지의 여건을 잘 살펴 한계감축비용에 대한 철저한 분석이 선행되어야 합리적 방안이 도출될 수 있을 것이다. 이러한 접근이 부재한 채 의욕이 앞선 목표는 자칫 탄소중립을 위한 동력도 약화시킬 수 있다. 기업의 수익성 저하는 장기적 관점의 투자를 어렵게 만들 수 있기 때문이다. 합리적 목표는 탄소중립을 명확히 지시하되 기업이 도전해 볼 만한 목표다.
다음으로 당면한 배출권거래제의 문제를 살펴보자. 현재 우리나라는 제4차 계획기간 배출권거래제 기본계획을 수립하고 있으며, 내년 초에는 이에 근거하여 배출권 할당 계획을 수립하게 된다. 최근 우리나라 배출권거래제가 거의 10년이 되어 가는 즈음에 우리나라 탄소가격제로서 역할이 충분하지 않다는 의견이 제기되고 있다. 대표적으로 우리나라 배출권 가격은 2020년 코로나19에 따른 경기 하락 이후 크게 하락한 상태로 톤당 약 1만원 수준에서 낮은 가격대가 지속되는 상황이다.
이러다 보니 우리나라 배출권거래제가 느슨하게 운영되었다거나, 특히 일부 대기업이 배출권 잉여가 발생했다는 것에 대한 문제 제기가 있다. 이에 제4차 계획기간 배출권거래제에는 배출권 할당 등에서 더욱 감축을 강화하는 방향성이 필요하다는 주장이 있다. 그러나 이는 다소 피상적인 문제 제기에 불과하다고 생각된다. 일부 기업의 배출권 잉여가 해당 업종의 경기 침체에 의해 발생한 것은 배출권거래제의 본질적인 특징이며 이를 두고 제도가 문제가 있다고 할 수는 없다. 낮은 가격이나 잉여 발생을 근거로 제도를 강화해야 한다는 주장이 근거가 미약한 이유다.
배출권 가격이 낮은 수준으로 유지된 바탕에는 배출권 잉여가 발생해서 배출권 물량이 시장에 출회되었기 때문인데, 이는 다배출 업종의 침체 등의 경기 요인과 이월 제한 등의 제도적 요인이 중첩되었기 때문이다. 배출권거래제는 경기 순응적으로 경기 변동과 같은 방향으로 움직이는 특징이 있다. 따라서, 업황이 좋지 않아 배출권 잉여가 발생한 기업이 있다는 것에 대해 문제가 있다고 보는 것은 적절하지 않다. 경기가 좋지 않아 법인세 세수가 줄어들었을 때 법인세율을 올려 세수를 확보해야 한다고 주장하지 않는 것과 같은 이치다.
제4차 계획기간 배출권거래제는 우리나라 NDC를 준수하는 방향으로 운영될 것이고 이는 기존의 방향과 다르지 않다. 다만, 최근 알려진 내용은 유상할당을 확대하거나 현행 업종 평균 수준인 벤치마크 수준을 강화하는 등 감축을 강화하는 방향을 지시하고 있다. 이러한 변화는 배출권거래제 발전의 과정에서 점차 감축에 대한 신호를 강화하는 차원에서 필요하다고 생각된다.
그러나 이러한 방향이 합리적으로 수행되기 위해서는 할당 방법, 기준 등의 변경이 합리적 비용 산정의 토대에서 이루어져야 한다는 것이다. 예를 들어, 발전 부문에 대한 유상 할당의 확대가 소비자의 전력 소비 절감, 효율화 등의 촉진하기 위해서는 적시에 기후환경요금에 반영되는 체계가 필수적이다. 그러나 실제 이런 체계는 확립되어 있지 않다. 한편, 유상할당 수준에 따라 얼마나 기후환경요금 상승의 효과가 발생하는지에 대해서 다면적 분석이 시행될 필요가 있다. 현재 벤치마크 방식으로 할당을 받는 정유업계도 벤치마크 기준이 강화된다면 이에 대한 영향이 어떤지, 그리고 이는 정유업계가 노력하면 달성 가능한 수준인지 따져볼 필요가 있다.
배출권거래제의 운영과 제도 내용이 합리성을 확보하기 위해서는 다양한 전문가나 이해관계자가 참여하여 배출권거래제에 대한 심도 있는 평가와 토론을 할 수 있는 개방성이 필수적일 것이다. 이를 위한 기반으로 배출권거래제 관련 데이터의 과감한 공개가 필수적이라고 생각된다. 요즘 데이터의 개방과 활용을 통한 제도의 개선은 전 사회적으로 필요성이 인정되는 만큼 여러 전문가가 쉽게 접근할 수 있는 상세한 배출권거래제 데이터의 공개를 통해서 배출권거래제의 비용과 편익을 따져볼 수 있는 환경이 필요하다. 이미 일부 배출권거래제 데이터는 공개 중이지만, 공개되는 자료의 범위나 깊이는 매우 부족한 것으로 보인다.
제4기 배출권거래제에서 전반적인 감축의 강화가 추진된다면 제도의 유연성을 높이는 것도 반드시 이루어져야 한다. 경직적인 이월제한 규제는 완화하되, 가격의 급등락을 막을 수 있는 시장 안정화 장치로 잘 보완할 수 있는 체계가 필요하다. 전반적으로 감축이 강화될 것인 만큼 상쇄의 활용에는 좀 더 전향적으로 접근할 필요가 있을 것으로 보인다.
배출권 시장은 좀 더 순수한 시장의 기능에 따라 배출권의 수급과 거래가 조절되고 가격이 형성되는 시장 지향적 방향이 적절하다고 생각된다. 물론 앞서 논의한 대로 시장 안정화 장치는 잘 구축하되, 정부의 임의적인 개입을 최대한 배제하고 준칙에 의해 작동되는 시스템을 마련하여 시장 기능을 훼손하지 않는 것이 좋을 것이다.
2035 NDC와 배출권거래제는 우리나라의 온실가스 감축 목표를 설정하고 이행하는 두 개의 축이라고 할 수 있다. 두 개의 축을 잘 구축하는 것은 우리나라 탄소중립의 이행을 위해 필요하다. 그러나 이 축이 잘 구축되어 있다는 것이 강한 목표와 강한 규제를 의미하지는 않는다. 교과서적 표현으로는 합리적인 목표와 규제가 정답일 것이다. 합리적인 목표와 규제를 위해서는 이 축을 받치고 있는 우리나라 경제와 산업이라는 토대에 대한 현실적 이해가 필수적이다. 비용에 대한 고려 없는 의욕은 허상일 뿐이다.
NDC|배출권거래제|탄소중립|정유산업탄소중립|온실가스감축목표설정