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문가칼럼
횡재세에 대한 헌법상의 문제
기업을 겁박하는 횡재세 카드
최근 한 국회의원은 “금투세 내년부터 차질없이 시행 … 부자감세 용납 못 해”라고 말했다. 그는 또 정부의 세제개편안을 “감세 조치의 대부분이 상속세 완화로 발생하는 것이라면 그야말로 초부자 감세”라고 비판했다. 그는 “종부세를 완화하면 집값 잡는 걸 포기하는 것”이라면서 종부세 완화에 반대한다. 금융투자소득세, 상속세, 종합부동산세 개편안에 모두 반대한다는 것이다.
대한민국에서 부를 일군 사람들에 대한 반감(反感)이 고스란히 묻어나는 발언들이다. 부를 일군 사람들과 그렇지 못한 사람들을 갈라치기하여 서민들의 표를 끌어모으겠다는 계산이다. 이런 사람은 한국 부자들의 한국탈출 수치가 세계 4위라는 걸 모르는 것 같다. 부자들이 떠난 동네에 고만고만한 사람들이 낸 푼돈으로 나라를 꾸려가는 것이 아마도 그가 꿈꾸는 세상일까.
그는 한 술 더 떠, “부자 선심성 정책으로 무리하게 세금을 깎아준 부분에 대해 원상회복하는 방안을 검토해야 할 것이고, 횡재세 등 새로운 세원도 발굴해가야 하지 않을까 싶다”고 했다. 한국에서 횡재세 논의가 처음은 아니다. 정치인들은 고금리 시대에 들어 일시 평균 이상의 수익을 거둔 은행과, 영업이익이 들쑥날쑥한 에너지(정유)기업에 대해 틈만나면 횡재세 카드로 기업들을 겁박한다.
유럽연합 집행위원회의 횡재세 권고
횡재세(windfall profit taxes 또는 windfall taxes)는 경제 상황으로 인해 기업이나 산업이 예상치 못한 큰 이익을 얻었을 때 부과되는 일회성 세금이다. 유럽연합 집행위원회는 2022년 3월 8일 REPowerEU 커뮤니케이션을 통해 회원국들에게 모든 에너지 공급업체에 대해 일시적으로 횡재세를 부과할 것을 권고했다. 집행위원회는 이러한 조치가 기술적으로 중립적이어야 하고, 소급 적용되어서는 안 되며, 도매 전기 가격과 장기 가격 추세에 영향을 미치지 않도록 설계되어야 한다고 주문했다.
2022년 9월 30일 유럽연합 이사회는 화석 연료 기업에 EU 차원의 횡재세(EU 용어로는 ‘연대 기여금, solidarity contribution’)를 부과하기로 합의했다. 동시에 재생 에너지, 원자력, 갈탄 등 비주류 인프라 한계 기술을 사용하여 전기를 생산하는 발전업체가 얻을 시장 수익에 상한선이 설정됐다. EU는 이 정책으로 약 1,400억 유로를 조달할 것으로 예상하고 있다. 이 수익은 “모든 최종 소비자를 지원하는 비선별적이고 투명한 조치로” 가계의 높은 에너지 요금을 부분적으로 상쇄하는 데 사용될 수 있을 것으로 예측됐다.
EU 이사회가 EU 차원의 횡재세를 승인한 지 9개월이 지난 후, 2023년 6월 25개 유럽 국가가 EU 차원의 횡재세 또는 이와 유사한 제도를 발표, 제안하거나 또는 시행했다.
횡재세의 헌법적 문제
횡재세는 설계가 매우 까다롭고 어렵다. 따라서 횡재세를 도입한 대부분의 국가에서는 에너지 및 석유 가격 급등으로 인해 발생한 횡재 이익만을 정확히 포착하는 방식으로 과세표준을 설계하지 못하고 있다. EU 권고와 대부분의 유럽 국가가 시행한 것처럼 자의적으로 결정된 가격 이상으로 전기를 판매한 경우 매기는 세금이나 스페인처럼 총 판매량에 대해 세금을 부과하는 방식은 결국 소비세(excise duties)와 더 비슷한 모양이 되고 말았다. 나아가 설계상의 오류로 여러 가지 문제를 일으켰다. EU 집행위원회 보고서에 따르면, “회원국 간의 다양한 시행 전략으로 인해 투자자들의 불확실성이 크게 증가했다”고 하며, 따라서 집행위원회는 이러한 엉망인 조치를 지속적으로 연장하라고 제안하지는 않을 것이라 한다. 또한, 유럽 의회의 연구에 따르면 역사적으로 횡재세가 투자에 나쁜 영향을 미쳤다는 사실도 밝혀졌다. 특히 이탈리아 헌법재판소는 이탈리아판 횡재세가 위헌이라고 결정했다.
이탈리아의 횡재세
이탈리아는 2022년 3월 21일 법률로 에너지 가격 인하를 위해 ‘이탈리아 에너지 산업의 초과 이익에 대한 특별 기여금’(이탈리아판 횡재세)를 도입했다. 이 법률에 따라 이탈리아 재무부는 28억 유로(30억 달러)를 징수할 수 있게 됐다. 이에 따라 에너지 기업들은 부가가치세가 부과되는 사업을 기준으로 매출액 25% 비율의 세금을 추가로 납부해야 했다. 이 세금은 러시아의 우크라이나 침공으로 인한 높은 에너지 비용으로 피해를 입은 가정과 기업을 위한 구호조치에 사용될 예정이었다. 전쟁이라는 비상사태에 직면하여 국민들의 생활안정을 도모하기 위한 불가피한 조치라고 당시 마리오 드라기(Mario Draghi) 총리와 재무부 관리들은 주장했다.
이탈리아 횡재세는 이탈리아 내에서 전기 생산, 메탄 가스 생산 또는 천연 가스 채굴, 전기 및 메탄 가스, 천연 가스 판매, 또는 석유 제품의 생산, 배급 및 거래를 하는 회사 및 전기, 천연 가스, 메탄 가스 또는 석유 제품을 수입하여 판매를 하는 회사에 적용됐다. 그러나 전기, 가스, 환경 인증서 및 연료의 거래를 조직하고 관리하는 회사는 제외됐다.
이탈리아 정부는 횡재세로 인하여 세금이 최종 소비자에게 전가되지 않도록 하는 조치를 포함시켰지만, 횡재세 설계상 여러 가지 허점을 드러내고 있음이 밝혀졌다. 우연적이고 예외적인 이익을 포착하기 어려웠고, 가격 변동과 연결되지 않은 다양한 요인에 영향을 받아 부가가치가 증가된 경우 이를 포착해 제거할 장치가 미흡했다. 또 가격 변동에 대비하여 헤지(hedge) 방식을 활용하는 경우가 있어, 가격 변동과 재정적 이익이 실제로는 상관관계가 없는 경우도 허다했다. 이러한 다양한 왜곡현상은 이탈리아 헌법재판소가 횡재세를 헌법적 차원에서 검토하기로 결정하는 빌미를 제공하는 결과가 됐다. 시장 참여자들은 횡재세 법안이 제대로 작동할 수 없다는 걸 확신하고 헌법재판소가 새로운 세금을 무효화할 것으로 예상하여 횡재세 납부를 거부하거나 미루었다. 따라서 횡재세 수입은 미미했다. 이탈리아 정부는 횡재세 납부거부를 단속하기 위해 행정 세금 미납에 대한 벌금을 60% 인상했다. 이 법안을 통과시킨 드라기 총리는 2022년 10월 23일 임기를 마치고 이탈리아 로마의 치기궁(Chigi Palace)을 떠났다.
2024년 6월 27일 이탈리아 헌법재판소는 드라기 총리가 2022년에 부과한 에너지 횡재세의 일부가 불법이며, 따라서 횡재세 부과는 무효라고 판결했다. 김리안 기자, 유럽發 ‘횡재세 열풍’ 급제동…伊 헌재 “이중과세 위헌,” 한국경제신문, 2024.06.28., 지면 A8. https://www.hankyung.com/article/2024062896371 헌법재판소는 2023년 이탈리아의 예산 적자는 GDP의 7.4%로 27개 유럽연합 국가 중 가장 높은 수준이었다. 이처럼 어려운 로마의 공공 재정에 영향을 미칠 것으로 예상되는 결정임에도 불구하고, 이탈리아 헌법재판소는 “비상사태가 정부의 모든 요구를 정당화하는 것은 아니다”(Emergency does not justify all state demands)는 유명한 문구를 선보였다.
이탈리아 헌법재판소가 횡재세 무효를 판결한 가장 중요한 이유는 이들 기업들에게 이미 세법에 정한 대로 “소비세가 선반영된 이익을 기준으로 다시 세금을 부과하는 것은 이중과세 성격을 띤다”는 것이다. 헌법재판소는 2022년 에너지 초과이익세의 정당성을 확인했지만, 초과이익세의 과세 기준에 소비세를 포함하는 것은 이탈리아 헌법 제3조 및 제53조에서 정한 원칙에 위배된다고 판시했다. 이로써 이미 횡재세를 납부한 기업들은 환불을 요구할 수 있게 됐다. 조르지아 멜로니(Giorgia Meloni) 현 총리 역시 2023년에도 횡재세를 부과했다. 유럽사법재판소는 이 2023년에 시행한 횡재세에 대해서도 그 정당성에 대해 판결할 예정이다.
이탈리아 헌법은 제3조와 제53조는 다음과 같이 되어 있다.
이탈리아 헌법
제53조 [조세] |
이탈리아 헌법재판소는,
첫째, 횡재세가 국민의 평등권을 침해하는 것으로 봤다. 소비세(excise duties)를 횡재세의 과세 표준(taxable base)으로 삼고 있는바, 사업자가 소비자에게 소비세를 징수하도록 되어 있다는 것이 이를 징수하는 사업자의 ‘과세 능력(tax capacity)’이 증가된 증거로 간주될 수 없으며,
둘째, 실제로 소비세를 부과하는 세금은 소비를 위해 출고된 상품에만 적용되며, 이러한 세금을 포함한 대금청구서(sales invoice)를 발행하는 사업자(납세자)는 소비세가 면세 또는 유예된 상태에서 상품을 거래할 수 있는 사업자들과 비교하여 불리한 차별대우를 받는 것이 된다고 판단했다.
이탈리아에서 이처럼 횡재세가 헌법상 문제로 지적된 것은 횡재세의 설계상 문제가 있었다는 것인데, 이것은 횡재세를 정확하게 설계하기가 어렵다는 방증이다.
이탈리아 헌법 제3조는 한국 헌법 제11조에 해당한다. 한국 헌법 제11조 제1항은, "모든 국민은 법 앞에 평등하다. 누구든지 성별·종교 또는 사회적 신분에 의하여 정치적·경제적·사회적·문화적 생활의 모든 영역에 있어서 차별을 받지 아니한다.”고 되어 있다. 제1항의 내용은 서로 비슷하다. 한국에서도 횡재세가 도입되면 헌법상 평등권이 문제될 수 있음을 시사한다.
다만, 이탈리아 헌법 제53조는 “모든 국민은 그 자원에 비례하여 공공지출에 기여하여야 한다.”고 되어 있다. 그러나 이탈리아판 에너지 횡재세는 잘못된 설계로 인하여 소비세와 연동시킴으로써 소비세를 납부하는 기업들만 과도한 부담을 지게 되어 자신이 가진 자원에 비례하는 조세를 부담하지 않게 되는 문제를 낳았다.
이탈리아 헌법 제53조는 한국 헌법 제59조 “조세의 종목과 세율은 법률로 정한다.”에 해당한다. 그러나 한국 헌법이 더 폭력적이다. 조세의 종목과 세율은, 온전히 정부에게 맡기는 것도 문제이지만, 온전히 국회에게 맡기는 것도 문제다. 적어도 조세의 종목을 새로 도입함에는 국민투표에 붙이는 방안을 검토할 필요가 있다. 얼마 전 강만수 전 기재부 장관이 “종합부동산세는 세금의 이름을 빌린 정치 폭력”이라고 한 것이 바로 이것이다. 국민의 재산을 강탈할 권리가 정치인의 입맛에 달렸다는 것이다. 강만수 전 장관이 말하는 정치 폭력배가 바로 정치인 자신이라는 것을 그들만 모른다. 이런 헌법 규정이 이 글의 첫머리에 쓴 대로 국회의원이 멋대로 세목과 세율을 정할 수 있다는 오만을 유도한다.
한편, 이탈리아는 2023년 8월, 2023 회계년도의 은행의 초과이익에 대해 횡재세를 도입했다. 이 세금의 세율은 40%로 설정되었으며, 특히 높은 이자율에서 발생하는 은행의 초과 이익에 부과됐다. 그러나 정부의 횡재세 도입 방침이 공개된 8월 8일(현지 시간) 이탈리아 은행주 지수는 7.3% 급락했고, 유로존 은행지수(SX7E)는 3.7% 하락하며 이탈리아발(發) 금융 불안이 유럽 금융권으로 전이됐다. “은행 횡재세가 외국인 투자를 위축시킬 수 있다”는 내외 언론의 질타가 있었다. 조르지아 멜로니 정부는 “횡재세 부과액에 일정 상한을 두겠다”, “횡재세를 반으로 깎아주겠다”는 등 부랴부랴 진화에 나섰다. 결국 이탈리아 은행 횡재세는 사실상 의미가 없어졌다.
시사점
횡재세 도입을 찬성하는 자들은 기업이 자신의 투자, 독창성 또는 노력의 결과가 아닌 것으로부터 이익을 얻었고, 그 이익은 사회의 희생으로 얻은 것이므로 재분배가 적절한 시정 방법이라고 주장한다. 그러나 횡재세는 대부분 경제적 취약계층 보호 등을 표방하지만, 실제로는 정치적 동기로 인한 것이기 때문에, 실제로 조세 체계상의 결함, 헌법적 문제, 국가 보조금 규정의 위반 가능성 그리고 정치적 논란이 따를 수밖에 없다.
횡재세를 납부해야 하는 납세자들은 이 세금을 납부하지 않아도 되는 다른 납세자들보다 불공평하게 대우받고 있다고 생각할 수 있다. 공공의 이익에 기여한다는 정당하고 타당한 이유가 없는 이상 이러한 불평등한 대우는 저항을 불러올 수밖에 없다. 현재 유럽에서 널리 시행되고 있는 횡재세는 필연적으로 시장을 왜곡할 수밖에 없다. 시장을 왜곡하지 않으면서 추가 세수 확보라는 목표를 달성할 가능성은 매우 낮다. 오히려 국내 에너지 생산에 벌칙규정을 추가하여, 건전한 과세표준도 없이 에너지 산업에 징벌을 가하는 것이 된다. 횡재세는 경기 사이클을 무시하여 투자자들을 겁박하고, 지구 온난화를 억제할 투자를 방해하며, 연구개발 여력을 고갈시킴으로써 에너지 부족 사태를 해결할 대안 모색을 불가능하게 한다. 결국 국민의 삶을 더욱 피폐하게 할 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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