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문가칼럼
2024년 국제 원유 시황과 유가 전망
김태환 연구위원/실장
(에너지경제연구원 석유정책연구실)
국제 원유가격은 수많은 변수에 의해 움직여 내일의 유가를 정확히 맞춘다는 것은 그야말로 불가능하다. 그러나 본질적으로 가격은 수요와 공급(세계 석유 소비량과 산유국의 공급량)의 함수이다. 석유수급은 단기비탄력적이라 분기별 석유수급은 비교적 예상가능한 범위 내에서 움직인다는 점에서 이를 바탕으로 한 분기별 유가 전망은 제한적이나마 의미가 있다. 이것이 많은 기관이 유가 전망치를 분기별로 하는 이유다.
올해 국제 유가는 두바이유 기준 배럴당 $82로 전년 동기 대비($93/b) 15% 하락한 수준에서 마감할 것으로 보인다. 올 한 해의 석유시장을 한 문장으로 표현하자면, 주요국 경기둔화에 따른 석유수요 부진 우려와 이에 대응하는 OPEC+ 감산 대응의 팽팽한 힘겨루기로 정리할 수 있겠다. 수급적인 측면에서 보면 1분기 중국의 ‘제로코로나’ 정책 폐지로 시작된 세계 석유수요 회복과 2분기 OPEC+의 감산 영향으로 상반기 내내 원유 재고는 축소되었고, 3분기와 4분기는 각각 계절적 요인과 미국경기의 예상 밖 호조로 석유수급이 초과수요 상태를 유지했다. 이러한 수급적 상황에도 불구하고 4분기 유가가 오르지 못한 가장 큰 이유는 내년 세계 경기의 본격적인 침체에 따른 석유수요의 하락 우려를 지목할 수 있다.
국제 석유시장은 근래에 들어 격변을 경험하고 있다. 2020년 신종 코로나바이러스의 세계적 대유행으로 선물 유가가 사상 처음 마이너스를 기록했었고, 2021년 글로벌 공급망 대란으로 원유를 포함한 원자재 가격의 상승 랠리가 있었으며, 2022년 러시아-우크라이나 전쟁에 의한 석유·가스 시장의 대혼란 사태, 그리고 올해는 이스라엘-하마스 전쟁에서 촉발된 중동지역의 지정학 리스크가 석유시장을 뒤흔들었다. 무엇보다도 각국의 저탄소 경제체제로의 이행은 석유시장 참여자들의 혼란을 더욱 가중시키고 있다. 이러한 상황에서 내년 유가를 전망한다는 것은 매우 조심스러운 일이 아닐 수 없다.
우리 연구원은 2024년 새해 두바이유가 연평균 배럴당 $83을 기록하며 올해와 비슷한 수준을 보일 것으로 전망한다(기준안 시나리오). 수급적 측면에서 보면 내년 상반기 OPEC+ 감산으로 40만b/d 초과수요가 예상되고, 3분기 계절적 성수기로 유가는 연중 최고점을 기록한 후(수급균형), 4분기 90만b/d 초과공급을 보이며 유가는 하락 전환할 것으로 예상한다. 다만 내년 유가가 올해와 비슷한 수준을 유지한다 하더라도 석유시장의 구조적 변화 시점 이전인 2019년 평균 유가 보다는 여전히 30% 가량 높다. 이는 원유를 전적으로 수입하는 우리 경제에 썩 반가운 소식만은 아니다.
내년 유가 전망에 있어서 가장 주목해서 보아야 할 요소는 세계 경제의 회복탄력성이다. 앞서 잠깐 언급했다시피, 현재의 석유시장 참여자들은 내년부터 세계 경기가 본격적인 침체국면에 접어들며 석유수요 증가세가 더디게 나타날 것이라고 보고 있다(2024년 세계 경제성장률 3.0% by IMF 2023.10 전망). 따라서 경제 회복속도가 시장의 예상보다 더 빠르게(혹은 느리게) 나타난다면, 내년 유가는 더 높아(혹은 낮아)질 수 있다. 다른 한편으로, 현재 다수의 석유시장 참여자들은 OPEC+의 추가 감산 여력이 한계에 다다랐다고 평가하고 있다. 만약 시장기대와 달리 OPEC+의 감산 합의가 추가로 이뤄지거나 혹은 조기 와해될 경우, 유가는 더 높아지거나 낮아질 수 있다는 점도 알아둘 필요가 있다.
결론적으로 내년 유가도 사우디와 러시아를 중심으로 한 OPEC+의 유가 부양 의지와 세계 경기 회복에 따른 석유수요 증가세의 팽팽한 대결이 예상된다. 여기에 추가적인 관전포인트는 내년 미국 연준의 기준금리 인하 여부다. 기준금리 인하는 유동성 확대로 이어저 수요를 자극할 뿐 아니라, 달러 표시 유가의 움직임에도 큰 영향을 준다. 또 다른 포인트로 미국 대통령 선거를 꼽을 수 있다. 에너지 산업이 정치적 논쟁거리가 돼버린 현상이 참으로 우려스러운 일이 아닐 수 없으나, 세계에서 가장 힘이 센 나라인 미국의 대통령이 어느 당에서 누가 되는지에 따라 국제 석유시장은 크고 작은 영향을 받을 것이다.
매번 틀리는 전망이 무슨 의미가 있는가? - 혹자는 과거의 필자처럼 이렇게 질문할 수 있다. 끝으로 이에 대한 필자의 생각을 덧붙이며 글을 마무리하고자 한다. 경제통계학에서의 전망은 forecast(예상, 확률적)와 prediction(예측, 구체적)의 미묘하게나마 구분한다. 필자가 여기서 말하는 전망은 전자를 의미한다. 전망을 위해서는 먼저 수학적 시스템을 구축하고, 과거의 데이터를 통해 시스템 내 모수(파라미터)를 추정하게 되며, 이렇게 추정된 파라미터를 통해 미래를 이야기하는 것이다. 따라서 라틴어 “ceteris paribus(all else being equal)”가 경제학 모형에 필연적으로 함께한다. 현실은 시시각각 변화하나 전망치는 대개 이를 반영하지 못한다는 한계가 있다. 가격의 오름과 내림에 배팅하는 금융시장 참여자들은 유가의 정확한 예측을 원하겠으나, 우리 연구원에서 발표하는 전망은 확률적 진술로서 미래를 맞추기 위함이라기보다는 경제주체의 계획수립 시 참고로 활용되는 것을 목적으로 한다. 이러한 점에서 어쩌면 틀리는 게 당연한 전망이라 할지라도 그 안에 내재한 여러 가정과 수치에는 주목할 만한 가치가 있음을 이해했으면 한다.
유가전망|2024국제유가|원유시황|연준기준금리|대통령선거|OPEC+감산|세계경제성장률|ceterisparibus|에너지경제연구원|석유시장|중동리스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