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석유산업, 정부지원과 자구노력 병행돼야
  • 작성일2024/01/02 15:24
  • 조회 50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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석유산업, 정부지원과 자구노력 병행돼야

 

 

온기운 교수            
(에너지정책합리화를 추구하는 교수협의회 공동대표)

 

 

 

국내 석유산업의 경쟁력과 경제 기여

 

기름 한 방울 나지 않는 대한민국에서 수출 순위 2위를 석유산업이 차지하고 있다는 것은 새삼 놀라운 사실이다. 대한민국은 중동, 미주·유럽, 아시아 등 세계 20여 개국에서 하루 평균 270만 배럴의 원유를 도입, 이를 석유제품으로 만들어 60여 개국에 수출하고 있다. 원유 수입 물량 대비 석유제품 수출 물량 비율은 2006년 32.5%에서 5년 후인 2011년에 44.5%로 높아졌으며, 그로부터 10년 후인 2021년에는 46.5%(원유 수입 물량 9억 6015만 배럴, 석유제품 수출 물량 4억 4656만 배럴) 로 더욱 높아졌다. 수입 원유에 부가가치가 더해진 석유제품 수출을 통해 석유산업이 국가의 외화획득에 기여하는 정도가 높아지고 있는 것이다. 납사, 연료유, 석유화학 기초제품 등은 원유에 부가가치가 더해진 형태의 제품들이다. 2022년 석유제품 수출액은 629억 달러로 전체 수출액 6836억달러의 9.2%를 차지했다. 2009년 6.3%, 2010년 6.8%에서 수출 비중이 크게 높아졌으며, 2022년 수출 비중은 반도체(18.9%)에 이어 두 번째였다.

 

수출뿐 아니다. 석유산업은 도로, 해운, 항공 등 국내 수송 분야에 연료를 안정적으로 공급할 뿐 아니라 가정과 공장에 난방유나 취사·산업용 연료 등을 공급하고 국내 석유화학 산업에 중간 소재를 공급한다. 석유산업은 전후방 연관효과가 큰 산업 중 하나다. 조세 측면에서는 석유에 대해 부과되는 교통에너지환경세가 2021년에 16조 6,000억 원으로 국가 단일 세목 규모 4위를 차지할 정도로 세수 확보에 기여하고 있다.

 

이상을 종합해 보면 석유산업이 수출, 내수 모두에서 국가 경제에 크나큰 기여를 하고 있음을 알 수 있다. 생산·고용 효과도 물론 지대하다. 정제 능력이 1965년 하루 3만 3,000배럴에서 2021년 357만 2,000배럴로 108배 증가해 세계 5위를 기록하고, 석유 소비가 2021년 하루 281만 3천 배럴로 세계 7위를 차지하고 있음은 우리 석유산업의 위상과 국가 경제에서 차지하는 중요성을 단적으로 말해주고 있다.

 

 

 

석유산업에 대한 반시장적 시선

 

하지만 안타까운 게 있다. 석유산업에 대한 국내 일각의 시선이 곱지 않다는 점이다. 특히 정치권이나 정부가 툭하면 기름값 문제로 정유업계에 압박을 가하거나 독과점 남용의 혐의를 무리하게 적용하는 등 반시장적 분위기가 연출되는 경우가 빈발하고 있다. 정유업계가 국가 경제에 가져다주는 편익은 그다지 평가하지 않고 ‘동네북’ 취급하듯 때리기에 열중하고 있다.

 

정유업계가 어떻게 해서 현재의 4사 체제가 됐는지를 회고해 보면 정책당국이 독과점 폐해 운운하는 게 적절치 않다. 1997년 외환위기 당시 김대중 정부는 정유를 비롯한 반도체, 항공기, 철도차량, 선박용 엔진, 발전설비 등 주요 업종에서 기업 간 빅딜을 추진했다. 설비 과잉으로 인한 과당경쟁을 막고 사업구조조정을 통해 전문화·대형화의 기반을 마련하는 것이 목표였다. 정부 정책에 따라 SK(주), LG정유, 쌍용정유, 한화에너지, 현대정유 등 5개 사 중 현대정유가 한화에너지 정유 부문을 인수했다. 당시 이헌재 금융위원장은 “현재 5개 사가 과열 경쟁을 벌이고 있는 정유업계도 사업교환이 필요하다.”, “일부 정유사의 경우 해외 매각도 추진되고 있으나 이는 오히려 정유업체 간 경쟁을 더욱 부추길 가능성이 높은 만큼 빅딜을 통한 구조조정이 바람직할 것”이라고 언급하는 등 정유업계 빅딜의 필요성을 역설했다.

 

5사 체제가 4사 체제로 바뀐 것은 정부 정책에 의한 것임에도 불구하고 지금까지 정책당국이 독과점 구조를 지적하며 시장개입을 불사하려는 자세를 버리지 않는 것은 정책의 일관성 측면에서 문제가 아닐 수 없다. 2011년 당시 이명박 대통령이 “기름값이 묘하다”라고 발언하자 정부가 대대적인 조사에 나서 휘발유 가격을 리터당 100원 내리도록 한 바 있다. 정부가 정유업계를 압박하는 가운데 ‘국민석유회사’ 설립 같은 어설픈 발상이 제기되기도 했다. 지난해에는 정치권에서 정유사로부터 초과이윤을 환수하기 위해 횡재세를 도입하자는 주장이 제기됐으며, 정유사 원가를 공개하자는 취지의 법안이 발의되기도 했다.

 

기업은 이윤을 극대화하는 것이 최우선 목표다. 정치권이 횡재세 도입을 주장할 때 과연 무엇이 횡재 이윤에 해당하는지를 분명히 할 수 있는 객관적 척도부터 제시돼야 한다. 하지만 그게 쉽지 않다. 기업이 원가절감과 생산성 향상 등 각고의 노력을 기울인 결과로써 이윤이 증가했을 때 이를 초과이윤에 포함시켜 환수하려 한다면 어느 기업도 그런 노력을 기울이지 않을 것이다. 어느 부분이 횡재 이윤이고 어느 부분이 자구노력에 의한 것인지를 명확히 구별할 수 없는 상황에서 무턱대고 횡재세를 도입하겠다는 것은 언어도단이다.

 

과점 구조하에서 정유사가 담합을 통해 부당한 이득을 취득한다는 것은 현실적으로 어려운 일이다. 예를 들어 한 정유사가 석유제품 가격을 올리면 다른 정유사도 가격을 올려야 담합을 통한 이윤 획득이 가능하겠지만 다른 경쟁사가 가격 인상으로 응하지 않으면 오히려 시장을 빼앗겨 매출과 이윤이 줄 수 있다. 정유사 간 시장수요에 관한 판단이 다르고 상대방에 대한 불신으로 ‘죄수의 딜레마’가 작용하는 상황에서 실제로 담합하기가 용이하지 않다. 공정거래위원회가 과거 수차례 담합 건으로 정유사에 대해 과징금 처분을 했지만, 법원에서 취소 판결이 내려진 사실은 담합 적용을 무리하게 했음을 말해준다.

 

 

 

정부, 석유산업 경쟁력 강화 여건 마련에 힘써야

 

정부는 국내 석유산업이 중국과 인도, 중동 등의 설비 확장과 이로 인한 수출시장 잠식 및 채산성 악화, 세계적인 탈탄소화 추세 등으로 위기에 직면해 있음에 주목하고 이를 극복해 나갈 수 있는 여건을 만들어 주는데 힘을 기울여야 한다. 국제에너지기구(IEA)가 최근 보고서(“The Oil and Gas Industry in Net Zero Transitions”, 2023.11. 23.)에서 지적한 대로 세계적으로 진행되는 에너지전환과 탄소중립 목표 추구는 향후 석유산업의 수익성에 타격을 줄 것이다. 미래 전망이 밝지만은 않은 상황에서 정책당국이 오로지 당장의 국내 소비자가격 하향 안정에만 집착해 정유 업계에 압박을 가해서는 곤란하다.

 

석유제품은 국민 생활과 밀접한 관련이 있어 공공재적 성격을 갖지만, 공공재 자체는 아니며, 소비에 있어서 경합성(rivalry)과 배제성(excludability)이 작용하는 엄연한 사적 재화(private good)다. 따라서 정부가 공기업을 관리하거나 공공재의 시장실패를 치유하기 위해 개입하듯이 석유 시장에 경솔하게 개입해선 안 된다.

 

정유사들은 외국인을 포함한 다수의 주주와 종업원 등 이해관계자들을 거느리고 있다. 주식회사로서 이윤을 창출해 주주에게 적절한 배당을 해줘야 하며, 미래에 대한 투자도 단행해야 한다. 국제유가의 변동성은 정유사의 이윤이 해마다 변동될 수 있음을 의미한다. 어느 시기에는 유가 상승으로 이윤이 증가할 수 있지만, 또 어느 시기에는 유가가 하락해 손실이 날 수도 있다. 이윤이 장기간 지속되리라는 보장이 없다. 만일 정책당국이 시장원리에 반해 석유 시장에 무리하게 개입하려 한다면 주주의 반발이 거세지고 경우에 따라서는 법적 문제로까지 비화될 수 있을 것이다.

 

 

 

정유사, 친환경 사업구조 전환을 위한 자구노력 필요

 

현 시점에서 정유사들 스스로가 자구노력을 기울이는 것도 물론 중요하다. 무엇보다 시대의 화두인 ESG(환경·사회·지배구조) 경영을 통해 소비자들로부터 긍정적 평가를 많이 받도록 해야 한다. 보여주기식으로 사회공헌 활동을 하거나 정책당국에 등 떠밀려 사회에 기금을 출연하는 식의 소극적 태도를 보이지 말고, 진정성을 갖고 국민에 다가가도록 해야 한다.

 

지난해 11말~12월 중순 아랍에미리트(UAE) 두바이에서 개최된 제28차 유엔기후변화협약 당사국총의(COP28)에서 ‘탈화석연료 전환’에 대한 합의가 이루어졌다. 화석연료에서 '멀어지는 전환'(transitioning away)을 위해 화석연료의 '단계적 축소'(phase down)를 가속해 가자는 것이다. 주 대상은 석탄이며, 석유는 산유국의 영향력이 작용해 이번에 합의문 문구에서 일단 빠졌지만, 중장기적으로는 석유도 전환의 예외가 될 수 없을 것이다. 이러한 시대적 변혁기 속에서 국내 석유산업은 스스로 친환경적인 사업구조로 전환하기 위한 노력을 강도 높게 기울여야 한다. 석유 탐사·개발·생산, 판매, 서비스 등 기존의 수직적 사업구조에서 벗어나 청정에너지 등 다른 분야로 수평적 사업다각화를 서둘러야 한다. 수소 및 수소 기반 연료, 탄소 포집·활용·저장(CCUS), 해상풍력, 액체 바이오연료, 바이오메탄, 지열 에너지 등이 대상 영역이다. 전기화 및 전기차 보급 확대 추세에 맞추어 전기충전소를 적극 늘려 나갈 필요도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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