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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유기업의 ESG 확대를 위한 정책적 지원 방향
  • 작성일2023/10/20 18:25
  • 조회 57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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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유기업의 ESG 확대를 위한 정책적 지원 방향

 

 

정현상 겸임교수                

(숙명여자대학교 글로벌서비스학부)

 

 

 

넷 제로 전환은 인류의 최대 도전 과제

 

국내외 ESG(환경, 사회, 기업 지배구조) 논의에서 핵심은 환경, 그 중에서도 기후변화, 그 중에서도 온실가스 감축이다. 파리협약에서 약속한 2100년까지 지구 평균 표면온도 1.5℃ 이내 제한 목표와 연동해서 탄소중립 목표를 정하고, 온실가스 배출 저감을 위한 기후 테크를 어떻게 받아들이며, 기업이 영속할 수 있는 비즈니스 모델을 어떻게 개발하느냐가 핵심인 것이다. 이것은 온실가스의 주원인인 화석연료 석유로 영위하는 정유기업들에게 더욱 핵심적 ESG 활동이 될 것이다.

 

 

하지만 정유업계의 움직임은 더디기만 하다. 아직도 ‘황금의 샘’ 석유가 언제까지라도 세계 에너지 패권을 쥘 수 있을 것으로 여기는 것일까.

2023년 6월 공개된 CDP & WBA(세계 벤치마킹 연합) 보고서에 따르면 BP, 엑손모빌, 사우디아람코 등 세계 100대 정유사들은 2021년 이후 파리협약의 목표인 탈탄소를 향한 진전이 매우 느리다. 2022년 사우디아람코 등 세계 7대 석유 및 가스 회사는 3800억 달러(약 500조)의 순이익을 기록했고, 81개 정유사는 2021년부터 석유 제품 생산을 오히려 늘리고 있는 상황이다. CDP 보고서에 따르면 대부분의 기업이 저탄소 기술 투자액을 공개하지 않았고, 네스테만이 투자액의 88%를 고급 바이오연료와 같은 저탄소 부문에 투자(1위)해 1.5도 시나리오에 도달할 수 있을 것으로 분석됐다. SK이노베이션도 충분하지는 않지만 국내 기업 가운데 유일하게 탄소기술 저감 투자 비율이 10위권(9위)에 들었다.

 

 

지구 기후의 파국을 막기 위해선 화석 에너지에서 신재생 에너지로 에너지 산업이 급격하게 전환해야 한다. 국제에너지기구(IEA)도 9월말 ‘넷제로(온실가스 순배출량 영) 로드맵’ 업데이트 보고서를 내고 에너지 전환과 국제적 연대를 다시 강조했다. 2011~2020년 사이 지구 표면 평균온도는 산업화 이전인 1850~1900년보다 1.09도 올랐다. 기후학자 캐서린 헤이호우에 따르면 이 평균기온 1도 상승은 사람의 체온 1도 상승만큼이나 위험하다. 파티 비롤 IEA 사무총장은 “1.5도 약속을 지키려면 전세계가 서둘러 함께 해야 한다. 다행히 우리는 무엇을 어떻게 해야 하는지 잘 알고 있다.”고 말했다.

 

 

파리협정에서 약속한 것이 얼마나 진전되고 있는지 점검하는 제28차 유엔 기후변화협약 당사국 총회(COP28)가 올해 말(11월 30일~12월 12일) 아랍에미리트 두바이에서 열린다. 사전에 공개된 보고서에 따르면 현재 세계는 파리협정 목표에 한참 미치지 못하고 있다. 석유 본산지 중동에서 COP28이 열리기 때문에 이 행사에 대해 회의적 시각도 적지 않지만 저물어가는 화석 연료의 운명에 대한 치열한 논의가 진행될 것으로 보인다. 화석연료 자체의 퇴출을 요구하는 측과 화석연료에서 나오는 온실가스 배출량 저감이 먼저라는 측의 주장이 팽팽하게 대립하고 있는 상황이다.

 

 

넷 제로 세계로 전환하는 것은 인류가 맞닥뜨린 가장 큰 도전 가운데 하나다. 넷제로 세계는 우리가 생산하고, 소비하며, 활동하는 모든 방법의 완전한 전환을 요구한다. 에너지 섹터는 세계 온실가스 배출량의 4분의 3을 차지하고 있으며, 기후변화의 파국을 바꿀 수 있는 열쇠를 쥐고 있다. 석탄, 가스, 석유에서 재생 에너지원으로의 전환은 온실가스를 드라마틱하게 줄일 수 있는 방법이다.

 

 

 

기후위험 소송과 쉘, 그리고 넷 제로 비즈니스 모델

 

시대가 바뀌었다. 위기의식을 느끼는 많은 사람들이 에너지 분야의 변화를 요구하고 있다. 2023년 2월 쉘 이사회는 기후위험을 잘못 관리한다며 소송을 당했다. 환경 로펌 클라이언트어스(Client Earth)가 주주 자격으로 제소했다. 쉘 이사회가 파리기후협정에 맞는 에너지 전략 전환을 이행하지 않아 회사법을 위반했다는 내용이었다. 결론은 경영상의 “경쟁 고려”가 존중돼 쉘 이사회가 승소했다. 하지만 이사회가 쉘의 에너지 전환을 제대로 준비하지 못해 미래의 상업적 성공 가능성을 위험에 빠뜨렸다는 클라이언트어스의 주장이 틀린 지적은 아니다. 이 문제는 앞으로도 계속 제기될 가능성이 있다.

 

 

급격한 에너지 전환이 쉽지 않은 것은 분명하다. 하지만 그 길로 가는 길이 불가능한 것만은 아니다. 세계 최대 석유 가스업체 가운데 하나인 엑손모빌의 경우를 보면 여러 가지 가능성을 찾을 수 있다. 엑손모빌은 석유 및 가스 개발 및 판매라는 고탄소 강도(단위당 온실가스 배출량이 높음)인 현재의 비즈니스 모델을 해체하지 않고 넷제로로 전환할 수 있는 비즈니스 모델을 준비중이다. 물론 경영진이 아니라 2017년 역사적인 주주제안과 투표에 의해 시작된 것도 의미심장한 일이다.

2021년 엑손모빌의 스코프 1(온실가스 직접배출량), 스코프 2(전기 사용 등 간접배출량)는 1억1200만톤(tCO2e)이다. 석유제품 판매에서 생긴 스코프3(기타 가치사슬 배출량)은 6억9000만톤에 이르는데, 이는 캐나다 전체 온실가스 배출량에 해당한다. 이렇게 엄청난 온실가스 배출원이 넷 제로를 달성하는 게 과연 가능할까. 엑손모빌은 2050년까지 운영자산의 스코프 1, 2 부문에서 넷 제로 온실가스 배출 계획을 선언했다. 환경효율성(eco-efficiency) 프로세스와 시스템이 이 계획을 달성하는 데 핵심 역할을 할 것이라고 한다. 엑손모빌은 에너지 효율, 메탄 감축, 장비 업그레이드, 대기중 가스누출 및 연소 제거, 열병합발전, 재생에너지 발전 등 150여 개 잠재적 환경효율성 활동을 계획하고 있다. 물론 엑손모빌의 넷 제로 선언이 스코프3에 대한 목표를 제시하지 않아 그린 워싱(위장환경주의)이라는 주장은 정유사들이 깊이 고민해야 할 부분이다.

엑손모빌은 2027년까지 저탄소 이니셔티브에 150억 달러 이상을 투자할 계획이다. 또 탄소 포집 및 저장 산업에서는 세계적 리더인데 연간 약 850만톤의 온실가스 포집 및 저장 용량을 갖고 있으며, 이는 스코프 1,2,3 전체 배출량의 약 1.1%에 해당한다. 전세계 포집 및 저장 용량이 연간 약 4000만톤인데, 이 가운데 약 20%를 차지하고 있다.

 

 

국내 정유 산업에서도 변화의 조짐은 보이고 있다. 정제업을 통해 이익을 내오던 정유사들이 최근 화이트바이오, 지속가능항공유(SAF• Sustainable Aviation Fuel), 폐폴리스티렌 및 폐윤활유 재활용 기술 연구 등에 투자하면서 에너지 전환 시대의 비즈니스 모델을 찾기 위해 노력하고 있다. 화이트바이오는 광합성으로 생성되는 다양한 식물자원을 원료로 각종 에너지원과 화학소재를 생산하는 탄소저감 산업이다. SAF는 동식물성 기름, 해조류 등 친환경 연료로 만든 항공유인데, 2025년부터 유럽의 공항을 이용하는 비행기는 단계적으로 이를 사용해야 한다.

 

 

하지만 정유사들이 에너지 전환과 새 비즈니스 모델 찾기라는 핵심을 놓치고 ESG 활동을 하는 것은 자칫 그린워싱의 의심을 살 수도 있다. 잔반 없애기, 재활용품 분리배출, 텀블러 머그컵 사용, 계단 이용, 전기 절약 같은 생활 속 개인의 ESG 실천은 그 자체로 소중하지만, 정유사들에게는 후순위의 일들이다. 기후변화로 인한 물리적 위험과 전환 과정에서 맞닥뜨리는 위험들을 단기, 중기, 장기로 나눠 대응책을 모색해야 한다.

 

 

 

ESG 공시표준과 정부 지원 정책

 

2023년 가장 관심을 받은 ESG 이슈는 ESG 공시 표준과 제도화다. 국제회계기준(IFRS)의 S1(지속가능성 관련 재무정보 공시를 위한 일반 요구사항) S2(기후 관련 공시)가 6월 말, 유럽지속가능성공시기준(ESRS)이 한달 뒤인 7월말 각각 확정됐다. 지난해 3월 초안이 공개됐던 미국 증권거래위원회(SEC) 안도 올해 연말 확정될 예정이다. 이들 3대 공시표준은 공통적으로 기후 리스크의 식별과 평가, 관리, 전략 등을 꼼꼼히 공시하도록 요구하고 있다. 유럽 등 해외에 진출한 다수의 국내 기업도 공시 대상이다.

 

 

국내의 경우 2025년부터 단계적으로 ESG 정보 공시를 의무화하기로 돼 있었는데, 최근 기업의 요구를 받아들여 1년 연기하는 방안이 금융위원회에서 논의되고 있다. 수출로 먹고 사는 한국 경제는 ESG와 지속가능경제를 선도적으로 받아들여 글로벌 경쟁력을 갖추는 것이 중요하다. 그런데 한국 정부의 이 같은 정책 변화는 단기적으로는 기업의 환영을 받겠지만, 장기적으로는 기업 경쟁력을 떨어뜨리는 결과를 낳을 수 있다.

 

 

정부는 또 신재생 에너지를 크게 늘려서 기업들이 글로벌 ESG 장벽을 넘을 수 있도록 도와야 한다. 애플 같은 다국적 기업은 공급망 기업에게 RE100 가입을 요구한다. 하지만 국내 기업들이 RE100 선언을 해도 실제 국내에서 신재생에너지가 공급되지 못할 경우 목표를 달성하기 어렵다. 국내의 30개 RE100 가입 기업들이 2022년 전체 사용전력 가운데 약 7% 정도를 재생 전력으로 썼다. 그 중에서 5% 정도는 해외에서 썼고, 국내에선 2%에 그쳤다. RE100에 가입한 삼성전자가 지난해 쓴 전력량이 22.92TWh(테라와트시)인데, 한국의 풍력과 태양광 발전 총량이 21.4TWh였다. 정부가 이 상황을 바꿔야 한다.

 

 

IEA나 CDP 등이 지적했듯 에너지 기업들의 ESG 발걸음이 더딘 것은 기업 자체만의 문제는 아니다. 급격한 에너지 전환을 요구받는 시대이지만 눈앞의 성장에 급급한 기업에게 미래의 생존 문제를 이야기하려면 그에 맞는 정책을 내놓아야 한다. 에쓰오일의 경우 모기업인 아람코가 울산에 짓는 석유화학 복합단지 건설 사업인 샤힌 프로젝트로 온실가스 배출량이 급격히 늘어날 판이다. 법적 지원을 받는 이런 사업에 대해 대규모 온실가스 배출을 비난할지언정 막을 수는 없는 일이다. 따라서 정부와 국회 등 관계 기관에서 정유기업의 에너지 전환에 대해 더욱 치밀하게 고민할 필요가 있다. 환경부는 ESG 경영 지원을 위한 컨설팅, 자금지원 등 다양한 지원사업을 추진 중이지만, 대부분 중소 중견 기업을 위한 지원 정책이다. 정부는 정유기업들이 재생에너지, 기후테크 등 지속가능한 영역으로 비즈니스 모델을 확장할 수 있도록 규제 완화와 지원 정책으로 뒷받침해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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