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각자도생 시대 중동정세와 석유 시장 전망
  • 작성일2023/07/25 09:5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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각자도생 시대 중동정세와 석유 시장 전망

 

 

성일광 정치·경제연구실장          

(고려대학교 중동·이슬람 센터)      

 

 

 

 각자도생의 시대다. 작년 러시아의 우크라이나 침공 이후 국제사회는 자주국방의 중요성을 새삼 돌아보게 되었다. 특히 이란의 군사적 위협에 처한 걸프국가는 우크라이나처럼 될 수 있다는 충격에 휩싸였다. 사우디아라비아와 UAE는 이미 오래전에 자주국방밖에는 해답이 없다는 역사적 교훈을 깨달았다. 2003년 미국의 이라크 침공에 따른 이란의 영향력 확대와 2015년 이란 핵협정 타결, 2019년 이란의 사우디 아람코 정유시설 공격, 2021년 미국의 아프가니스탄 철수 등 일련의 사건 이후 역내 많은 국가는 안보 불안을 체감하고 생존법을 고민할 수밖에 없었다. 현실주의 국제정치 이론은 일찍이 냉엄한 국제정치환경에서 한 국가의 생존은 자구책 외에는 특별한 대안이 없다고 주장한다. 힘이 약한 국가는 강대국에 편승하거나 힘을 키워 세력균형을 유지하는 것이다. 이런 측면에서 현재 중동에서 불고 있는 데탕트 바람을 이해할 수 있다. 역내 국가는 생존을 위해 새로운 합종연횡을 이어가고 있고 강대국 역시 미국이 비운 자리를 차지하기 위해 치열하게 경쟁 중이다. 중동은 현재 변화와 구시대의 잔재가 함께 뒤섞인 하이브리드 시대를 경험하고 있다. 이전에 풀리지 않았던 문제 일부는 여전히 남아 있지만 역내 환경은 다극 체제를 향해 매우 빠르게 변하고 있다. 이란 핵문제는 여전히 난항에 빠져 있고 이스라엘-팔레스타인 분쟁 역시 국세 사회의 관심에서 이미 멀어진 지 오래다.  

 

 

 반면 데탕트 분위기는 확실하다. 2011년 ‘아랍의 봄’ 이후 역내 분쟁에서 편을 지어 대리전을 치러온 중동 국가들이 일제히 데탕트 물결에 합류하고 있다. 이유는 간단하다. 오래된 역내 분쟁 개입에 따른 피로감이다. 미국의 영향력이 축소되면서 비교적 느슨해진 역내 미국-중국 전략경쟁이 오히려 아랍국가의 운신 폭을 넓힌 것도 데탕트에 도움을 주었다. 시리아와 리비아 내전에서 치열하게 대리전을 펼쳤던 UAE가 튀르키예와 관계 개선에 나선 것은 원유경제를 탈피하기 위한 산업 다각화에 집중하기 위함이다. 터키와 이집트 역시 역내 내전에서 상대방을 지지하며 국력을 소모했으나 대사 관계 복원에 합의했다. 바레인은 6년 만에 카타르와 대사 관계를 회복하기로 합의했다. 쿠웨이트와 UAE는 사우디보다 먼저 작년 이란과 관계 정상화에 합의했다.  

 

 

 이란과 사우디의 관계 정상화는 역내 데탕트를 확장하는 촉매제 역할을 하고 있다. 이란은 미국의 경제 제재를 돌파하기 위해 유럽 국가가 아닌 주변 아랍국가와 손을 잡으려는 것이다, 그러기 위해서는 사우디아라비아와 관계 정상화가 필요했다. 사우디와의 관계 회복은 다른 순니 아랍국가와 정상화로 가는 열쇠이기 때문이다. 중국이 이란과 사우디 관계 정상화를 중재한 것은 미국이 비운 공백을 채워 역내 영향력을 확대하기 위함이다. 사우디가 중국의 중재를 받아들인 것은 전통 우방 미국이 못 미덥기 때문이다. 이란의 군사적 위협이 실존하는 안보 환경에서 미국을 신뢰하지 못할 바에야 차라리 이란과 대화하는 편이 낫다고 판단한 것이다. 

 

 

 이러한 새로운 변화는 중동을 관통하는 두 가지 키워드, 외교 다변화와 산업 다각화로 설명할 수 있다. 외교 다변화는 미국-중국 전략경쟁에서 한쪽으로 치우치기보다는 국익에 도움이 되는 국가와 모두 손잡고 가겠다는 것이다. 중국과 러시아의 부상 때문에 가능한 것이다. 많은 중동 국가가 외교 다변화를 위해 취한 정책은 국제 관계에서‘가능한 모든 선택지’를 활용하는 것이다.  

 

 

 이란은 최근 중국과 러시아 중심의 정치, 경제, 안보 그룹인 상하이협력기구(SCO)의 정식 회원이 되었다. 바레인, 이집트, 쿠웨이트, 카타르, 사우디아라비아, UAE는 상하이협력기구의 현재 또는 미래 대화 파트너이다. 상하이협력기구는 북대서양조약기구(NATO)의 대안 조직으로 알려진 만큼 미국은 역내 국가의 상하이협력기구 가입은 달갑지 않다. 사우디아라비아와 이집트는 서로 경쟁 관계지만 인도와 중국이 모두 회원국으로 있는 신흥 시장 국가들의 모임인 브릭스(BRICS) 조직에 가입하는 데 관심을 표명했다. 중동에서 나토(NATO)에 가입해 미국과 공식적으로 동맹을 맺은 유일한 국가인 튀르키예는 상하이협력기구와 브릭스 두 조직의 회원국이 되는 데 관심을 두고 있다. 중동 국가의 외교전략은 한 마디로 다다익선이라 하겠다.  

 

 

 산업 다각화는 석유와 가스 의존경제에서 탈피하기 위해 첨단산업과 미래기술을 도입하겠다는 것이다. 걸프국가들이 일제히 대형국가 프로젝트를 계획한 이유는 국가 경제의 체질을 개선하겠다는 의지를 피력한 것이다. 관건은 대형 프로젝트 사업은 막대한 자금이 필요한 만큼 어떻게 적절한 유가를 유지하는가에 달려있다. 작년 7월 바이든 미국 대통령이 리야드를 방문해 무함마드 빈살만(MbS) 왕세자를 만나 치솟는 인플레이션을 잡기 위해 원유생산 감산을 요청했지만 보기 좋게 거절당했다. 올해 6월 토니 블링컨 미 국무장관이 다시 리야드를 방문해 사우디 달래기에 공을 들이고 있다. 이처럼 사우디와 미국 관계는 더 이상 미국이 주도할 수 있는 상황이 아니다. 특히 유가의 경우 배럴당 80달러 이하는 사우디가 명운을 걸고 추진 중인 대형 국책사업에 차질을 가져올 수 있는 만큼 자발적 감산까지 감내하고 있다. 따라서 빈살만이 미국의 감산 중단이나 증산 요구를 수용하기 어려운 상황이다. 빈살만은 과거 안보를 미국에 의존하고 안정적인 원유를 미국과 국제사회에 공급하는 방식의 관계가 아닌 사우디를 새로운 리더십을 가진 국가로 탈바꿈하려고 한다. UAE 역시 이미 수년 전부터 중국과 러시아 관계를 중요시하면서 대미 관계 조정이 불가피했다. 2021년 말 UAE는 미국이 중국 화웨이의 5G 통신장비 도입에 반대하자 F-35 전투기 공급계약을 아예 중단시켜 버렸다. 미국은 현재 역내 여러 국가의 각자도생 전략에 꽁꽁 묶인 현대판 걸리버 신세가 되었다. 사우디와 UAE는 이미 대미 추종 외교를 벗어났으며 이란은 핵 개발로 미국의 고질적인 골칫거리이며, 튀르키예는 북대서양조약기구 회원국임에도 러시아와 밀월관계이다. 전통적 우방국인 이스라엘마저 베냐민 네타냐후 총리가 사법부 정비에 몰두하면서 미국과 냉각기를 갖고 있다.  

 

 

 적정 수준의 유가가 유지되지 않는다면 사우디 주도의 감산은 계속될 것이다. 사우디의 수차례 감산과 러시아의 감산 참여에도 불구하고 유가는 반짝 급등 후 다시 하락하는 양상을 반복하고 있다. 감산 외에 유가를 결정하는 다양한 변수를 따져 볼 필요가 있는 것이다. 우선 일부 국가는 감산이 아니라 증산했다. 지난 4월 OPEC 회원국인 이란은 53만 bpd나 증산한 데다 미국도 산유량을 61만 bpd 늘렸다. 

 

 

 거시적으로 보면 현재 유가는 금융 시장의 혼란, 예상보다 느린 경제 성장, 고집스럽게 높은 인플레이션, 중앙은행의 끊임없는 금리 인상으로 압박을 받고 있다. 이에 따른 지속적인 경제 불확실성과 석유 수요에 대한 영향이 가격 전망에 큰 영향을 준다고 할 수 있다. 국제통화기금(IMF)은 4월 세계 경제 전망에서 글로벌 국내총생산 전망에 대한 위험이 "하방으로 크게 치우쳐 있으며 경착륙 가능성이 급격히 커졌다"고 경고했다. IMF의 전망에 따르면 GDP 성장률은 2023년 2.8%로 작년 대비 0.6%포인트 하락한 후 2024년 3%까지 상승할 것으로 예상한다. 게다가 금융 부문의 추가 압박과 코로나 19 제한 완화 이후 예상보다 느린 중국 경제 반등으로 인해 2023년 글로벌 성장률은 약 2.5%로 떨어질 수 있다고 본다. 다른 경제 전망 기관들은 IMF보다 더 낮은 성장률 전망치를 제시하고 있다. 현재 유가는 펀더멘털보다는 거시경제 우려 때문에 시장이 움직이면서 배럴당 80달러 이하를 유지하고 있다고 할 수 있다.  

 

 

  석유 시장에 영향을 줄 수 있는 또 다른 변수는 지정학적 변수다. 우크라이나 전쟁은 이른 시일 내에 종결될 가능성이 작아 다가오는 겨울 유럽이 어떻게 천연가스를 확보할지 지켜봐야 한다. 작년과 달리 에너지 대란이 발생한다면 유가에 상당한 영향을 주겠지만 온난화로 인한 이상 기후를 고려하면 다시 한번 따뜻한 겨울을 맞이할 가능성도 있다. 

 

 

 이란핵 협상은 이라크에 묶인 이란 자금 일부가 해제되면서 급물살을 탈 것으로 예상했으나 감감무소식이다. 추후 부분합의가 성사되면 이란은 하루 100만 bpd 수출 허가가 날 것이라는 보도가 있었다, 실제 이란의 석유 수출 허가가 승인되면 단기적 유가 하락은 불가피해 보인다.  

 

 

 

태그

우크라이나전쟁|이란핵협상|유가전망|중동정세|오펙감산|국제정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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