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문가칼럼
<석유와 에너지 기고>
[칼럼] 국내 석유제품 가격 산정방식에 대하여
강승진
한국산업기술대학교 지식기반기술․에너지대학원 교수
최근 중동 호르무즈 해협에서 유조선에 대한 공격과 미국-이란 간의 긴장 고조에 따라 국제유가가 반등하고 있다. 그런데 유가가 오를 때마다 나오는 이야기가 있다. 왜 우리나라 휘발유, 경유의 가격이 원유가격에 연동되지 않고 싱가포르 시장의 제품가격에 연동되어 국제 유가 변동을 잘 반영하지 못한다는 것이다. 하지만 이러한 얘기는 국내 석유제품 가격 결정방식에 대해 잘 이해하지 못하고 있거나, 일부 사실이 호도되어 나타나는 것으로 보인다.
사실 국내 정유사는 환율을 감안한 국제 석유제품 가격을 기준하고, 관세, 석유수입부과금, 유통비용을 더하여 기준 가격을 산정한 후, 국내 시장경쟁상황 등을 반영하여 주유소별로 최종 판매가격 산정을 하고 있다. 우리나라 정유사는 아시아 석유제품 시장을 대표하고 있는 싱가포르 국제 석유제품 시장 가격(MOPS: Means of Platt’s Singapore)을 기준으로 채택하고 있다. 주유소별 판매가격은 정유사별 차이가 있으나, 평균적으로 전주 국제석유제품 가격을 기준으로 정유사 공급가격을 산정하고 있다.
이렇게 국제 석유제품가 기준 국내 가격결정 방식을 채택한 배경은 1997년 국내 석유시장 자유화와 관련되어 있다. 즉, 1997년 석유시장 자유화 이후 국내 정유사들은 기존의 정부가 사용한 원유가 기준의 가격결정방식을 사용하였으나, 국제제품가격이 원유가격에 연동된 국내 제품가격보다 낮아지는 상황이 발생하였다. 이로 인하여 석유제품의 국제가와 국내가 가격 차이에 따른 수입물량 증가로 수입사의 시장 점유율이 급증하였으며, 국내 소비자, 언론, 국회 등도 정유사 가격 결정방식에 대해 문제를 제기하였다. 이에 따라 국내 정유사는 시장 자유화에 따른 환경변화(수입증가)에 대응하고, 국회/언론 등의 요구를 반영하여 국제 석유제품 가격을 기준으로 국내 석유제품 가격 결정방식을 변경하였다.
최근 모 매체에 기고 보도된 내용에 따르면, “문제의 핵심은 국내 소비자가격 결정 기준이 공급 원가가 아니라 수요 상황에 따라 수시로 움직이는 제품 가격이라는 얘기다.”라면서, 정유사들이 원유를 도입해서 휘발유를 만드는데, 왜 국제 휘발유 제품 가격에 기준을 두는가? 라고 문제를 제기한 바 있다. 싱가포르 국제시장 기준가로 하면서 그 과정에서 여러 가지 모순과 불투명성이 생겨나고 있다면서, 원유 도입가로 기준을 바꾸면 가격 결정 구조가 투명해질 것이라고 주장하고 있다. 이러한 문제 제기는 자유화된 국내 석유시장의 특성을 감안하지 않은 것으로 보인다.
시기 |
제도 |
내용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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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48~1969 |
고정가격제 |
∙정부 고시 통제가격제도(`48~64) ∙정부 고시 고정가격제도(`64~69)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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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69~1994 |
최고가격제도 (원유가 기준) |
∙공장도가격의 최고판매가격제(`69~`72) ∙소비자가격의 전국 균일 최고가격제(`72~`94)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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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94~1997 |
원유/제품가격연동제 |
∙국내 유가를 국제원유가/제품가 및 환율에 연동시켜 월1회 변경(유가 자유화에 대비한 준비기간)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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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97~2001 |
유가자유화 |
∙국제 원유가 연동 기준 방식 사용 (시장은 자유화되었으나, 기존 정부의 가격 책정방식과 유사한 방식의 가격책정방식 유지)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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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1 이후 |
∙국제 석유제품가 기준의 가격 책정방식으로 변경 |
생산비용을 기준으로 가격을 책정하는 방식(원유가 기준)은 제품 가격 결정의 가장 기초적인 방법으로 정부의 가격규제가 있는 산업부문에 많이 활용되나, 시장이 개방된 경쟁체제에서는 공급과 수요의 변화를 가격에 적절하게 반영하지 못하는 자중손실(deadweight loss)을 야기한다.
첫째, 국내가격만 원유가 기준으로 사용시 원유가 기준의 국내가격과 국제가 기준의 수출가격간 이중가격 문제 및 수급 왜곡 현상이 발생한다. 시장이 개방된 상황에서 국내 가격을 국제 가격과 다르게 유지할 수 없어 결국 국제가격으로 수렴될 수밖에 없으며, 이 과정에서 시장의 혼란만 증대된다. 또한, 해외 정유사 및 수입사는 국내 가격이 높은 상황에서만 공급을 늘리고, 국내 가격이 낮으면 공급하지 않아 안정적인 내수공급 시스템 구축이 어려워 국민 후생 감소 및 국내 정유사의 경쟁력 하락을 초래한다.
둘째, 원유가 기준으로 국내 가격 산정할 경우 개별 석유제품의 실제 수급을 반영한 가치와 괴리가 발생하며, 이 경우 국내 소비자들이 해외보다 더 높은 가격을 지불할 수도 있다. 국제 유가 상승기에는 국내 가격이 국제 가격보다 낮게 산정될 수 있으나, 국제 유가 하락기에는 국내 가격이 국제 가격보다 높게 형성될 수밖에 없어, 국내 시장의 불안정성이 증대된다.
셋째, 석유제품은 세계시장에서 경쟁하고 있어 통상적으로 수송비 차이 수준에서 가격이 수렴되는 반면에, 원유의 경우 지표원유의 수급 등에 따라 권역별로 큰 차이를 보인다. 예를 들어, 미국 내에서 거래되는 원유가격은 한국보다 12.7$/B 낮은 반면, 미국 휘발유 현물시장가격은 오히려 싱가폴 국제 현물시장보다 1.2$/B 높게 나타나기도 한다.
<표 > 한/미 원유수입가격 및 국제현물시장의 휘발유 가격 비교('18.9)
($/B) |
미국 |
한국(싱가폴) |
차이 (미국-한국/싱가폴) |
원유(CIF) |
63.77 |
76.47 |
△12.70 |
휘발유 |
90.75 |
89.53 |
1.22 |
자료 : IEA, Energy Prices and Taxes ('18.4Q) |
국내 석유제품 시장은 수출입이 자유로운 경쟁시장이기 때문에 국내 석유제품 가격은 국제 석유제품 가격에 수렴하는 것이 불가피하다. 원유가 기준으로 가격 결정시 수출입이 자유화된 국내 시장 상황을 고려하면, 수입사 등이 시장에 참여하며 결국 국제 제품가에 수렴될 수밖에 없으며 이 과정에서 수급 불안정 등 시장 혼란이 발생했던 경험을 우리는 기억하고 있다. 또한, 국제가격을 기준으로 하는 가격 책정은 수출입이 자유로운 시장에서 자연스럽게 결정되는 시장 가격을 기준으로 한다는 점에서 국내외 수급변화로 인한 시장변화가 가격에 적절히 반영되어 시장의 왜곡을 최소화하는 것이다.
미국, EU, 호주, 일본 등 시장이 개방된 나라는 우리나라와 마찬가지로 모두 국제 제품가를 기준으로 자국내 석유제품 가격을 결정하고 있다. 예를 들어, 유럽(ARA)과 미국(Gulf Coast 등)은 자국내 현물시장 가격에 연동하고 있다. 일본의 경우도 `08년 상반기까지 원유가 기준 방식을 사용하였으나, ‘08년 고유가시 국제가와 일본내 가격 및 수급 간에 심한 괴리가 발생하여 일본도 제품가 기준의 가격 결정방식으로 변경하였다. 다만, 중국, 인도네시아 등 일부 개도국은 과거 한국과 같이 정부의 가격고시 제도를 적용하여, 손실 발생시 정부가 세금을 통해 손실을 보전하고 있다.
휘발유, 경유 등의 석유제품은 국민 대다수가 자동차용으로 사용하는 필수 소비재이므로 가격 변화에 민감할 수밖에 없다. 일부에서 국내 석유제품 가격을 원유 도입가로 기준을 바꾸면 가격 결정 구조가 투명해질 것이라고 주장하나, 이는 국내 석유시장 자유화 취지를 곡해하고 수급상황에 따라 가격이 결정되는 시장경제 원리를 지키지 않는 것이다. 정유사는 원유를 도입하여 생산되는 석유제품의 절반 이상을 수출하는 국제적인 기업이며 국제 제품 가격과 시장 원리에 따라 국내 제품 가격을 책정하고 있다. 대부분의 선진국처럼 국내 제품가를 국제 제품가에 연동시키는 방법이 국내의 석유 시장의 투명성을 제고하고 수급 및 가격 혼란을 방지할 수 있는 길이다.